야당이 9일 ‘국회에서 국무총리를 추천해 달라’는 박근혜 대통령 제안을 거절했다. 야 3당 대표는 국회 회동에서 박 대통령 제안을 “일고의 가치도 없다”면서 12일 촛불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당연한 일이다. 대통령이 권력을 내려놓을 분명한 의지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국회가 국무총리를 추천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야당이 국민과 함께 대통령의 가시적이고 분명한 후퇴를 요구하는 건 옳다.
야당이 대통령 제안을 거부하자 새누리당에선 벌써 ‘무책임한 야당’이라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야당이 요구하는 걸 다 받았는데도 계속 조건을 다는 걸 보니 거국내각의 의지가 있는 건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말 헷갈리는 건 국민이다. 박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을 내려놓으라는 게 국민 요구인데, 청와대는 여전히 헌법을 들먹이며 ‘대통령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굽히질 않는다. 배성례 청와대 홍보수석은 “헌법에 명시된 내각 통할권과 (장관) 임명제청권, 해임건의권을 모두 총리에게 준다는 뜻이다. 대통령이 정말로 내려놓고 야당 의견을 들어서 ‘협치’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 국민이 요구하는 건 대통령과 국회의 ‘협치’가 아니다. 최순실씨의 비행을 방임한 박 대통령에겐 단 한순간도 국정운영을 맡길 수 없다는 게 국민의 솔직한 생각이다. 그런데 ‘헌법상 권한’을 얘기하며 대통령 지휘 아래 책임 총리를 하겠다는 발상을 버리질 않으니, 권력에 대한 집착 하나만은 평가해줄 만하다.
모호한 양보에 흔들려 야당 내부의 이견을 키운다면, 그건 청와대가 노리는 바다. 현 시국의 해법을 놓고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럴수록 국민과 함께 간다는 생각을 갖는 게 중요하다. 다수 국민의 의견에 기반을 둬서 현 시국을 수습하겠다는 기본 원칙을 갖고 야 3당은 긴밀한 공조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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