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등장은 우리나라 외교·안보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그가 내세우는 미국 우선주의 대외정책 기조는 잘만 대응한다면 우리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미국의 대외정책이 가장 크게 달라질 곳은 유럽·러시아·중동이지만 동아시아 지역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버락 오바마 정부가 힘을 기울여온 아시아·태평양 재균형 정책도 어떤 식으로든 조정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트럼프 당선자는 미국의 직접적인 이익이 분명하지 않으면 뒤로 물러설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는 ‘지역의 문제는 우선 그곳 나라들이 알아서 해야 한다’는 원칙과 통한다. 이 원칙은 다극화 추세에 상응하는 역사적 타당성을 갖는 측면이 있다.
우리나라 외교·안보의 미국 의존은 지나치다. 특히 박근혜 정부에서 더 심해졌다. 최근에는 미국만 바라보거나 미국 정책을 맹종한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모든 접촉이 끊긴 채 무력시위와 제재·압박 강화에만 기대는 대북 정책이 대표적이다.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도 미국 뜻대로 관철되고 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의 한반도 배치 결정과 천문학적 규모의 미국 무기 구입 계획도 마찬가지다. 전작권 환수 연기도 미국 바라보기의 산물이다. 결과 또한 좋지 않다. 핵 문제와 남북 관계는 이전보다 훨씬 나빠졌고 한-중 관계도 악화하고 있다. 우리가 미-일 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편입되는 양상은 외교·안보 자율성 축소의 한 단면이다.
우리 외교·안보에서 미국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다. 내실 있는 한-미 동맹이 필요하다. 하지만 동맹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미국이 우리 문제를 대신 풀어주지는 않으며 우리 이익을 먼저 고려하지도 않는다. 이는 트럼프 당선자가 되풀이해서 강조하는 내용이기도 하다. 지나친 의존과 맹신은 우리의 발목을 잡고 외교·안보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것, 미국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 등을 냉정하게 따져 한-미 관계를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핵 문제 해법과 한반도·동북아 평화구조 구축이다. 트럼프 당선자는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은 적이 없으며 적극적 의지가 있는지도 의문이다. 미국 의존을 줄이고 우리의 주도력을 키우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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