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대표가 14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여야 영수회담을 제안했다가 취소했다. 청와대는 즉각 이 제안을 수락했지만 민주당 안팎의 거센 반발로 끝내 추 대표가 회담 불참을 선언했다. 뒤늦게나마 박 대통령과의 단독 회담을 취소한 건 잘한 일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드러난 모습을 보면, 추 대표와 민주당이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받들어 위기를 수습할 능력이 있는지 강한 의심이 든다.
갑작스레 청와대에 회담을 제안한 추미애 대표 행동에 많은 시민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박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광장에서 전한 게 바로 엊그제인데, 제1야당 대표가 덜컥 혼자서 대통령과 만나 무슨 담판을 짓겠다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추 대표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박 대통령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민심을 전하면서 해법을 모색하고자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오만한 생각이다. 서울 중심가에 100만개의 촛불을 켜는 것으로 민심은 충분히 전달했다. 이젠 박 대통령 결단만 남은 상태다. 그런데 정국 주도는커녕 민심만 추수해온 민주당이 지금 와서 대통령에게 ‘촛불 민심’을 전하겠다는 게 설득력 있는 얘기인가. 박 대통령이 상황을 오판하게 만들 뿐이다. 국민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겠다는 행태와 다를 바가 없다.
얼마 전에도 우상호 원내대표가 국민 바람과 동떨어지는 ‘외치·내치 분담론’을 제시했다 여론의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박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을 내려놓으라는 국민 요구를 제대로 읽지 못했던 탓이다. 물론 제1야당으로서 현 시국을 수습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수습책은 어디까지나 국민의 뜻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국민과 동떨어진 행동을 하면서 ‘책임 있는 자세’라고 말하는 건,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물러나는 것보다 책임지는 게 중요하다”며 버티는 것과 하등 다를 게 없다.
지금 추미애 대표가 할 일은 박 대통령을 만나는 게 아니다. 국민의당·정의당뿐 아니라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과도 만나, 사실상 ‘대통령 유고 상태’인 현 시국을 어떻게 평화롭게 차기 정권 출범 때까지 관리할지 협의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제1야당이란 폼만 잡으려 할 게 아니라, 위기 극복을 주도하는 능력을 보여야 한다. 그래야 국민 신뢰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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