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쪽이 검찰 조사를 못 받겠다고 돌연 버티고 나섰다. 박 대통령이 변호인으로 선임한 유영하 변호사는 15일, 검찰이 요청한 16일 대통령 조사는 시간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서면조사가 바람직하다”며 “부득이 대면조사를 하더라도 특검도 예정돼 있으니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순실씨 말고 다른 관련자들을 모두 조사하고 여러 의혹에 대한 수사를 마친 뒤에야 박 대통령을 조사해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
이런 주장은 ‘시간 끌기’일 뿐이다. 박 대통령 쪽 말을 들으면 언제 조사를 받겠다는 것인지도 알 수 없다. 조사를 받고 싶지도 않고, 받더라도 시늉에 그쳐야 한다는 ‘억지’로도 들린다. 검찰 수사는 물론 특검 수사도 받겠다던 지난 4일 대국민담화와는 정반대다. 대통령 자신이 국정농단 사태의 주범이자 몸통임이 갈수록 분명해지자 어떻게든 추궁을 면하려고 구석으로 도망치는 형국이다. 대통령으로서의 당당함이나 품격은 찾아볼 수조차 없다. 책임을 피하지 않는 성숙한 인격인지도 의심스럽다.
청와대의 이런 입장에는 나름의 ‘꼼수’도 있는 듯하다. 19일이나 20일까지 최씨 등을 구속 기소하려면 박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불가피하다. 검찰이 적용한 직권남용 등의 혐의를 입증하는 데도 여러 의혹에서 지시와 소개 등 핵심적인 구실을 적극적으로 수행한 것으로 드러난 박 대통령의 진술이 있어야 한다. 검찰이 제3자뇌물죄 등의 적용까지 검토하는 마당에선 대통령 조사가 더욱 중요하다. 여야 정치권에선 최씨 등의 공소장에 박 대통령의 관여 사실과 혐의가 드러나면 이를 대통령 탄핵 추진의 근거로 삼을 수 있다고 보고 있기도 하다. 박 대통령 쪽이 당장은 수사를 못 받겠다고 억지를 쓰는 것도 어떻게든 최씨 등의 공소장에 박 대통령의 진술을 담지 않으려는 안간힘으로 보인다. 치졸하기 짝이 없다.
박 대통령 쪽은 조사를 회피하는 이유로 “현직 대통령이 새로운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조사를 받으면 국정 수행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들었다. 가당찮은 주장이다.
박 대통령은 이미 국정을 수행할 권위도 정당성도 다 잃었다. 그가 대통령 임기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는 이제 거의 없다. 누구도 수긍하지 않을 핑계로 수사를 피하려 한다면 어떤 험한 꼴을 더 겪을지 알 수 없게 된다. 박 대통령은 당장 수사에 응해야 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