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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겨레 사설] 촛불을 믿고 가라

등록 2016-12-02 19:06

주말마다 전국에서 타오르는 200만개의 촛불, 잇따른 대국민 담화에도 여전히 4%에 머물고 있는 대통령 지지율, 75%에 이르는 탄핵 찬성 여론조사 결과…. 이 정도면 사태가 이미 오래전에 일단락됐어야 옳다. 그런데 이 땅에서는 상식과 순리가 여전히 물구나무서 있다. 그리고 국민은 엄동설한에 또다시 촛불을 준비하고 있다. ‘이것이 나라냐’는 분노에 가득 찬 질문은 이제 청와대를 넘어 여의도 정치권을 향하고 있다.

야3당은 2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해 오는 9일 표결처리하기로 했다. 전날 탄핵안 발의 불발에 분노한 민심에 화들짝 놀란 결과다. 하지만 탄핵안 가결까지는 곳곳이 지뢰밭이다. 새누리당 비박계의 탄핵 반대 움직임에 더해 야당 역시 좌고우면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촛불 민심에 대한 과소평가는 청와대나 새누리당뿐 아니라 야당 역시 마찬가지다.

탄핵 가도의 첫번째 걸림돌은 박 대통령의 대응이다. 다급해진 박 대통령이 ‘4월 퇴진’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또다시 대국민 담화를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그런 약속이 어떤 의미를 지닐지 매우 회의적이다. ‘도대체 왜 4월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이것이 지금 국민이 던지는 질문이다. 박 대통령이 촛불 민심에 밀려 한 걸음씩 후퇴하지만 ‘나는 무죄다’라는 믿음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설사 ‘즉각적인 2선 후퇴’를 약속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의 약속이 순식간에 휴짓조각이 될 수 있음을 국민은 박 대통령의 말 바꾸기를 통해 처절히 깨달았다.

애초 ‘질서있는 퇴진’이니 ‘국정 공백의 최소화’니 하는 말이 중요한 때도 있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교활한 꼼수로 그런 말들은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오염된 단어가 돼버렸다. ‘명예’는 피의자 대통령의 불명예 퇴진을 막는 연명책의 미화이며, ‘질서’는 반격을 위한 시간 벌기를 의미하는 단어에 불과해졌다. 이제는 탄핵안을 가결하지 못하고 국정을 표류시키는 것이 무질서이고 국력 낭비다. 박 대통령은 헌법 위반, 뇌물죄, 공무상 비밀누설죄 등에 더해 ‘모국어 모욕죄’까지 저질렀다.

적지 않은 사람이 탄핵안의 부결을 우려한다. 자칫 박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주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걱정한다. 맞다. 그런 사태는 결코 와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럴수록 멈칫거려서는 안 되는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거대한 민심의 쓰나미 속에서 자질구레한 전략이나 시나리오는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상황이 혼란스러울수록 원칙을 지켜나가는 게 중요하다. 확실한 것은 박 대통령은 하루빨리 물러나야 하며, 새누리당은 그 대목에서 캐스팅보트를 쥘 아무런 자격이 없다는 점이다. 그 엄중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정치세력의 앞날은 없다.

이제 국민은 또다시 촛불을 준비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교활한 꼼수를 불태우고, 정치권의 착각과 판단착오를 불살라버릴 촛불이다. 국민을 이기는 정치를 하겠다는 세력은 결코 살아남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촛불이다. 그리고 탄핵안이 부결될 경우 이 땅에 벌어질 엄중한 사태에 대한 무서운 경고의 촛불이다. 촛불은 그 안에 이미 ‘무질서의 질서’를 내포한 채 활활 타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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