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개 재벌 총수들이 증인으로 나온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회 청문회의 성과 중 하나는 총수들로부터 ‘전국경제인연합회 탈퇴 의사’를 끌어낸 것이다. 전경련 해체 찬반을 묻는 여야 의원들의 질문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에스케이그룹 회장, 손경식 씨제이그룹 회장이 찬성했다. 구본무 엘지그룹 회장도 해체까지는 아니지만 미국의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처럼 바꾸자는 대안을 내놨다.
그동안 간간이 나온 전경련 해체 의견은 올해 4월 전경련이 어버이연합의 관제 데모에 거액의 뒷돈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이어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이 미르·케이스포츠재단 출연금 모금에 관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전경련 해체 요구는 광범위하게 퍼졌다. 전경련이 권력과 결탁해 정경유착의 온상이 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경련은 해체 요구에 묵묵부답이었다.
이런 가운데 주요 재벌들이 탈퇴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전경련 해체의 전기가 될 수 있다. 전경련의 1년 회비 수입이 약 390억원인데, 이 중 삼성과 현대차 등 5대 재벌이 절반이 넘는 200억원가량을 부담하고 있다. 또 재계 순위 1, 2위인 삼성과 현대차가 탈퇴하면 다른 회원사들도 도미노처럼 뒤따를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회원사들 사이에서는 전경련의 잇따른 일탈이 재계 전체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반기업정서를 확산시키고 있다는 불만이 컸기 때문이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속담이 있다. 무슨 일이든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바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얘기다. 텔레비전 생중계를 통해 전경련 탈퇴를 국민에게 약속한 재벌 총수들이 당장 탈퇴서를 제출하면, 전경련은 해산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 시간을 끌 하등의 이유가 없다.
전경련회관 등 수천억대 자산을 어떻게 할지도 빼놓을 수 없는 사안이다. 전경련은 2014년 기준으로 자산이 3603억원에 부채가 3489억원으로 자본은 114억원에 불과하다. 전경련이 거액의 자산을 활용해 이름만 바꿔 딴짓을 할 수도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주요 재벌 총수들이 참여하는 전경련 회장단이 회관 매각으로 부채를 갚는 구조조정을 단행해 이런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라고 제안했다. 남는 자산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사회적으로 신망받는 인사들의 의견을 모아 결정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관련 영상] 한겨레TV | 더 정치
6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청문회에 출석한 재벌 총수들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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