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 와중에 8개 시중은행이 12일 일제히 임시이사회를 열어 성과연봉제 도입을 의결했다. 민간기업인 시중은행들이 같은 날 동시에 임시이사회를 열어 동일한 안건을 처리한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이다. 은행들에 ‘성과연봉제 연내 도입’을 재촉해온 금융위원회의 압력이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동안 금융위는 국내 금융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금융개혁’ 차원에서 성과연봉제의 연내 도입을 강하게 주장해왔다. 반면 노동계는 ‘쉬운 해고’와 함께 성과연봉제는 노동자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노동 개악’이라며 강력히 반대해왔다. 서로 의견이 상반되지만, 임금·근로조건의 변경이 따르는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려면 노사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지난 6월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등 금융 공기업부터 밀어붙였다. 당시에도 노조와 합의 없이 이사회 의결을 강행했고, 노조는 “원천 무효”라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금융 공기업에도 그래서는 안 되지만 시중은행의 성과연봉제 도입에 금융위가 노골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관치금융’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정부가 금융개혁을 하겠다면 관치금융부터 청산해야 한다. 우리 경제를 골병들게 한 대우조선 등 부실기업 문제도 관치금융 탓이 크다. 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성과연봉제 등 정부의 ‘노동개혁’ 추진 배경이 의심받고 있다. 미르·케이스포츠재단 등에 거액을 낸 재벌들의 민원 해결용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조의 반대를 억누르면서까지 도입한 성과연봉제가 과연 무슨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되레 노사 간의 불신과 갈등만 증폭시켜 성과를 떨어뜨릴 수 있다. 또 평가의 주관성과 조직 사기 저하 등 성과연봉제의 한계와 부작용 탓에 이미 국내외 주요 기업들은 이를 폐기하거나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임종룡 금융위원장 스스로 말했듯이 지금 경제가 ‘여리박빙’(얇은 얼음을 밟듯 몹시 위험함)인데, 성과연봉제 도입이 열 일 제쳐두고 강행해야 할 사안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금융위는 이제 성과연봉제 문제에서 완전히 손을 떼야 한다. 은행들은 이사회 결의를 백지화하고 노조와 합리적 대안 마련을 위해 진솔한 대화에 나서기를 바란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오른쪽)과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13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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