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조류인플루엔자(AI) 피해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지금까지 닭 1656만마리 등 1911만마리가 살처분됐거나 될 예정이다. 전체의 12%에 이른다. 2년 전 6개월 사이 1396만마리가 살처분된 것에 비하면 속도와 규모 면에서 거의 재앙 수준이다. 정부의 총체적 부실 대응으로 악몽이 현실화하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피해는 사육 농가만의 일이 아니다. 16일 기준 달걀 한판 소매가격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8.6% 급등해 학교급식에 비상이 걸리고 유통 및 판매업계도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재정지출도 2년 전의 2381억원을 훨씬 웃돌 전망이다. 정부는 19일 알 낳는 닭(산란계)을 수입해 달걀을 공급하고, 소비 활성화를 위한 홍보계획도 수립하겠다고 밝혔으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지난달 16일 첫 바이러스 검출 이래 지금까지 정부의 대응을 보면 무능과 무책임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조류인플루엔자가 세계 곳곳에서 연례행사처럼 발생하는데도 정신줄 놓은 사람들처럼 안이한 태도로 일관했다. 발생 한달 만인 지난 16일에야 위기 경보를 최고 수준인 ‘심각’으로 올린 것이 대표적이다. 일본이 지난달 21일 바이러스 검출 직후 위기 경보를 최고 수준으로 올린 것과도 대비된다. 물론 오리를 거의 키우지 않는 등 우리와 사육 환경이 다르다고는 해도 아베 신조 총리가 서둘러 범정부 차원의 방역에 나서 살처분 78만마리 등 피해를 대폭 줄인 것과 비교하면 무능한 행정력이 창피할 정도다.
김재수 농식품부 장관은 조류인플루엔자 확진 이틀 뒤에야 가축방역심의회를 여는 등 늑장행정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지난 15일 경보를 ‘심각’으로 올리면서 엉뚱하게 살아있는 닭 유통은 허용했다가 이틀 만에 다시 금지하는 등 오락가락한 것도 정부의 대응 능력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 12일 뒤늦게나마 조류인플루엔자 방역 점검회의를 주재하는 등 적극 대응에 나서는 듯하더니 결국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엔 실패한 꼴이 됐다. 국회의 요구는 경시하면서 민생·교통 현장 방문(13일), 구세군 자선냄비 성금 전달(15일), 한미연합사 방문(16일) 등 ‘대통령 코스프레’에 정신을 팔 때가 아니다. 당장 시급한 민생 문제인 조류인플루엔자 방역 대책만이라도 제대로 추진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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