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0일 한국 특파원들과의 기자회견에서 “대한민국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제 한 몸 불살라서라도 노력할 용의가 있다”고 말해 사실상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했다. “정치라는 것이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기성 정치권과의 연대 가능성도 내비쳤다. 반 총장이 대선에 출마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본인이 판단할 몫이다. 다만 그가 보여온 기회주의적 행태나 천박한 역사의식 등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반 총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박-반 연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박근혜 대통령과 밀월관계를 유지해왔다. 한-일 위안부 협상에 대해 “박 대통령께서 비전을 갖고 올바른 용단을 내린 데 대해 역사가 높게 평가할 것”이라고 칭송했다. 반 총장은 새마을운동의 열렬한 찬양자이기도 했다. 반 총장의 이런 행보는 친박계에 업혀 대선 열차에 탑승하려는 계획과 무관치 않아 보였다. 그런데 예기치 않게 박 대통령이 몰락하자 매정하게 등을 돌려버렸다. “한국 국민은 국가의 리더십에 대한 신뢰가 배신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등 날 선 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은근히 비박계에 손짓을 보내는 모습이다. 외국 땅에서 계속 국내 정치 상황을 살피며 누가 자신을 대선 후보 꽃가마에 태워줄지 주판알을 튕기는 모습이 너무나 확연하다.
반 총장은 이날 회견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배신 논란을 두고 “인격 모독”이라고 반박했다. 2011년에 봉하마을을 찾아 노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한 사실 등도 근거로 들었다. 그러나 그는 노 전 대통령 서거 때 조문을 하지 않은 것은 물론 2009년 8월 ‘제주평화포럼’ 강연차 귀국했으면서도 묘소를 찾지 않았다. 반 총장은 이 대목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을 하지 못했다.
반 총장이 ‘충청권 대망론’에 기대는 모습도 별로 아름답지 않다. 다른 직책도 아닌 ‘글로벌’의 첨병인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사람이 고작 지역주의에 기대 정치를 하려 하니 혀를 찰 노릇이다.
반 총장은 평생 ‘촛불’과는 반대편의 길을 살아온 사람이다. 그런데 촛불로 비롯된 조기 대선 국면에 뛰어들려고 한다. 참으로 역설적이다. 반 총장은 대선 출마에 앞서 자신이 민주화를 포함해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 어떤 기여를 했는지부터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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