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히 예상하긴 했지만 뻔뻔하고 방자하기 짝이 없다. 22일 국회 ‘최순실 게이트’ 청문회를 지켜본 국민 심정은 다 이럴 것이다. 핵심 증인인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거의 모든 의혹을 부인하며 오직 ‘모르쇠’로만 일관했다. 심지어 최순실씨를 아느냐는 질문에 “언론에서만 봤고 현재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흡사 ‘제2의 김기춘’을 보는 듯했다. 그런데도 국회의원들의 추궁은 창끝이 무뎌 우병우의 방패를 뚫지 못하니, 국민으로선 답답하고 안타깝기가 이를 데 없다.
우병우 전 수석의 청문회 답변을 지켜보면서 이렇게 무책임하고 미꾸라지 같은 이들이 정권 핵심부에서 국정을 운영했다는 사실에 국민은 더 절망감을 갖는다. 나라는 엉망이 되고 대통령은 탄핵을 당했는데, 비서실장부터 수석비서관까지 청와대의 누구 하나 앞에 나서 ‘어떤 책임이라도 달게 지겠다’는 말 한마디 하질 않는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그랬듯, 우 전 수석 역시 교묘한 변명과 철면피한 부인을 늘어놓기에 여념이 없다. 대통령 얼굴에 주사 자국은 있지만 주사를 놓은 사람은 찾을 수 없듯이, 국정은 무너졌는데도 그렇게 한 주역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정권 핵심으로서 최소한의 책임조차 회피하는 우병우씨를 보면서, 박근혜 정권은 어쩌면 ‘유령 정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해본다.
우병우 전 수석에게 제기된 의혹은 중요한 것만 10개를 넘는다. 그는 그중 단 하나도 사실을 인정한 게 없다. 세월호 사건으로 해양경찰청을 압수수색할 때 광주지검 수사팀에 전화를 건 사실이 있다고 말한 게 거의 전부다. 그나마도 상황 파악이었을 뿐 수사 개입은 아니라고 피해 나갔다. 우 전 수석이 더 가증스러운 건, 법률 지식을 활용해서 교묘하게 처벌을 벗어나려는 바로 그 태도 때문이다. 그는 분명한 증거가 제시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선 “그런 적 없다” “사실이 아니다”라고 정면 반박했지만, 사실 자체를 부인하기 어려울 땐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부분은 입장을 밝히지 않겠다”고 피해 나갔다. 나중에라도 위증 등의 법적 문제가 제기되는 걸 미리 차단하려는 의도가 뚜렷했다. 실패의 책임은 지려 하지 않고 오직 제 살 길만 모색하는 이런 사람들에게 국정 운영을 맡겼으니 나라가 제대로 움직일 리가 없었을 것이다.
‘법꾸라지’란 별명을 가진 우 전 수석을 추궁하는 국회의원들의 준비는 부족했다. 언론 보도를 크게 넘지 못하는 자료만 가지고 질문을 하니, 우 전 수석이 아니라고 하면 더 깊이 파고들지 못했다. 한 야당 의원은 “(우 전 수석이 최순실씨와 골프를 같이 쳤다는) 증언과 증거를 특검에 제출하겠다”고 했는데, 그런 증거가 있으면 왜 청문회장에서 공개하지 않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엉성한 준비로는 법 기술자의 방패를 뚫기는커녕 국민 기대도 충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의원들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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