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이 찬성하도록 압력을 행사한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그런 압력이 있었기에 국민연금이 수천억원의 손실이 예상되는데도 무리하게 합병에 찬성했던 것이겠다.
문 전 장관은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을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삼성의 합병 방침 발표 직후인 지난해 6월에 이미 합병에 찬성할 방법을 강구하라고 보건복지부 간부들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국민연금 의결권전문위원회의 성향 조사를 지시했고, 직접 위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합병 찬성을 부탁하기도 했다. 그런 압박에도 전문위원회가 합병을 반대할 것으로 보이자, 문 전 장관은 전문위원회 대신 기금운용본부 투자위원회에서 합병 찬성 결정을 내리라고 지시했다. 실제로 홍완선 당시 기금운용본부장은 보건복지부 연금정책국 간부로부터 합병 찬성 요구를 받았다고 특검에서 진술했다. 투자위원회 개최 전에 위원이 교체되기도 했다. 그렇게나 무리수를 거듭한 배경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연결고리는 이미 여럿 드러났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을 보건복지부에 지시하고 직접 지휘했다는 증언은 진작에 나왔다. 관련 문건도 확보됐다고 한다. 안 전 수석이 “단 하나도 내가 판단하고 이행한 것이 없고 박근혜 대통령이 모두 지시했다”고 밝힌 터이니, 누가 ‘찬성 강행’을 정했는지도 뻔하다.
이권 제공의 맞은편인 대가 수수 과정도 확연하다. 지난해 7월10일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고 7월17일 합병안이 주총에서 통과된 뒤, 7월25일 박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독대했다. 독대 직전인 7월20일께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과 박상진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사장이 만나 정유라씨 지원에 대해 논의했다. 이어 삼성은 8월 말 최순실씨의 독일 현지법인을 통해 220억원 규모의 지원을 시작했다. 국민연금-보건복지부-청와대-삼성-최순실·정유라 모녀로 이어지는 ‘제3자 뇌물수수’ 관계다.
국민의 노후자금 수천억원이 그렇게 날아가 버리는 동안 공무원들은 제지는커녕 적극적으로 방조했다. 눈앞에서 불법이 벌어지고 위법인 지시가 내려오는데도 그저 따랐다. ‘위에서 지시하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변명할 일이 결코 아니다. 불법에 동조한 대가로 승진하고 영전한 ‘영혼 없는 공무원’들은 불법행위의 공범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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