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개입한 사실이 일부 확인됐다고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밝혔다. 김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지휘하고, 이에 반발하는 문체부 간부들의 사표를 요구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조 장관은 정무수석 시절 김 전 실장의 지시로 블랙리스트 작성을 주도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그가 장관이 된 직후 직원들에게 관련 증거를 파기하라는 지시가 내려지기도 했다. 조 장관은 그런데도 국회에서 “블랙리스트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등 위증을 한 혐의로 고발될 처지다. 이들의 혐의가 확인됐다니 수사에 더욱 박차를 가해 진상을 낱낱이 규명해야 한다.
블랙리스트라는 천박하고 야만적인 발상이 구체화되고 실행에 옮겨진 과정은 이미 어느 정도 드러난 터다. 2014년 6월 블랙리스트를 봤다는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 말로는, 김기춘 전 실장의 지시로 모철민 당시 교육문화수석이나 김소영 비서관을 통해 문체부에 블랙리스트가 전달됐지만,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것은 정무수석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이라고 한다. 특검 수사에선 국가정보원이 블랙리스트 작성에 개입한 단서도 드러났다. 사실이면 국정원이 사찰을 통해 얻은 정보를 제공하고, 청와대가 이를 토대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내려보내면, 문체부가 이를 활용해 문화예술인들을 옥죄는 실행 역할을 맡는 구조였을 가능성이 크다.
특검에서 더 밝혀야 할 것은 그런 발상의 진원이다. 유진룡 전 장관은 2014년 1월과 7월 박근혜 대통령을 면담해 블랙리스트 작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항의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박 대통령도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박 대통령이 최순실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처음 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했다는 정황도 있다고 한다. 그랬으니 국정원과 청와대 비서실 조직이 나섰던 것이겠다.
블랙리스트는 정부 마음에 들고 안 들고에 따라 문화예술인들을 박대하고 탄압하겠다는 것이니, 그 자체로 문화예술을 옥죄는 족쇄일뿐더러 문화예술인들을 자기검열로 몰아넣어 피폐하게 만드는 독극물이다.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헌법 위반이다. 다시는 이런 야만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엄히 단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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