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2일 귀국 기자회견에서 밝힌 여러 메시지 가운데 핵심 단어들을 꼽는다면 국민 대통합, 국제적 식견, 약자의 인권 대변, 정치교체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경력을 강조하며 자신이 국가 경영의 적임자임을 내세우는 일종의 출사표인 셈이다. 이런 말들은 반 전 총장의 강력한 권력의지를 보여주기에는 충분하지만, 그가 걸어온 삶이나 최근의 행보에 비춰보면 몸에 잘 맞지 않는 어색한 옷 같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반 총장이 내세운 ‘대통합’의 기치부터가 그렇다. 통합은 강자의 횡포를 저지하고 소외·박해받는 약자를 어루만지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은 박근혜 정권 시절 내내 권력이 자행해온 갈등과 분열 조장에 침묵했다. 특히 세월호 참사 이후 권력의 횡포로 나라가 갈기갈기 찢겼을 때 보인 태도를 되돌아보면 통합 주장의 허구성이 잘 드러난다. 기자회견에서 말한 “약자의 인권 대변”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정권 눈치 보기로 일관하던 그가 통합과 화해를 주장하는 모습이 씁쓸하기만 한 이유다.
그가 자랑한 “국제적 식견”도 마찬가지다. 반 전 총장은 자신이 한-일 위안부 협상을 극찬한 것에 대해 “협상을 통한 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대해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환영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 발언은 약자를 최우선에 놓아야 할 유엔 사무총장으로서도 부적절한 것이었다. 더욱이 최근 위안부 합의 이행 문제를 두고 한-일 양국 간에 마찰이 빚어지는 데서도 확인됐듯이 합의가 말썽 없이 순항하리라고 판단한 것 자체가 큰 오판이었다. 반 전 총장이 강점으로 내세우는 외교 능력이나 국제 문제에 대한 안목 자체를 의심하게 하는 대목이다. 반 전 총장이 회견에서 밝힌 “미래지향적으로 봐야 한다”는 식의 한-일 마찰 해소 ‘해법’도 알맹이 없는 전형적인 외교적 수사로 다가온다.
반 전 총장은 자신의 ‘23만달러 수수설’에 대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의혹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현실적인 방법은 이런 내용을 보도한 언론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해 이를 계기로 검찰이 사실 확인을 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반 전 총장은 이날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다.
반 전 총장은 이날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놓고 여러 차례 번복을 거듭한 끝에 공항철도를 타고 서울역으로 향했다. 국가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이 시민을 자주 만나 소통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다만 그런 행보가 ‘보여주기 이벤트’에 그쳐서는 안 된다. 반 전 총장은 앞으로 국민과의 진정한 소통을 통해 ‘광장의 민심’이 무엇인지, 자신이 평생 살아온 삶이 그런 가치에 부합하는지, 그리고 그런 국민의 바람을 충족할 자격과 능력이 있는지를 깊이 성찰해보길 바란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