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3일 새해 기자회견에서 대선 출마 가능성을 열어놓는 듯한 발언을 했다. 황 총리는 대선 출마 여부를 묻는 거듭된 질문에 “저는 국정을 안정시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지금은 오직 그 생각뿐이다”라고 대답했다. “대선 출마 의향이 없다”고 잘라 말하면 될 것을, 이렇게 모호하게 여지를 남겨두는 답변을 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는 속담이 있는데 황 총리가 딱 그렇다. 그러나 황 총리는 국정 파탄의 책임을 져야 할 핵심 중 한 사람이다. 차기 대통령이 뽑힐 때까지 임시로 국정을 책임지고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을 키우지 말고 권력 이양기를 관리하는 본분에만 충실하길 바란다.
기자들을 불러모아 ‘신년 기자회견’이란 행사를 하는 것 자체가 사실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 권한대행인 국무총리가 국정 운영의 방향을 밝히겠다는데 그걸 막을 도리는 없다. 하지만 조기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조용히 국정을 챙기면 될 일을, 굳이 대통령처럼 새해 기자회견을 여는 것부터가 정치적이란 의심을 살 만하다. 기자회견 내용은 더욱 가관이다. 대선 출마에 대한 질문엔 직답을 피했다. 또 “국가적 위기 극복을 위해 국민 대통합이 중요하다. 최근 일련의 사태로 국론이 분열되는 상황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자신이 ‘국가적 위기’의 주범이라는 사실은 망각한 채, 마치 국민을 위기에서 구할 사명을 띠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지금이 ‘국론 분열 상황’이란 건 대통령 탄핵이 분열을 불러왔다는 뜻으로 들린다.
23일 나온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황 총리는 4.6%의 지지를 얻었다. 여권에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19.8%)에 이어 2위다. 반 전 총장 지지율은 하락세지만 황 권한대행은 상승 추세라고 한다. 이런 상황이 기자회견 내용과 무관하지 않다고 많은 사람은 생각한다.
지금 박근혜 정권의 장차관과 청와대 비서실장·수석비서관을 지낸 인사들이 줄줄이 특검 수사를 받고 있다. 황 총리 역시 이들과 책임을 나눠서 져야 하지만, 권력 이양기를 잘 관리하는 게 중요하기에 권한대행직을 수행하게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현실을 잊고 헛된 꿈을 꾸다가는 국민적 분노의 표적이 되리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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