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조카 반주현씨가 장기간 병역기피자로 지명수배되어 있는 사실이 밝혀졌다. 유력한 대선 후보의 친인척이 망국적 병역기피 당사자라는 점에서 놀랍고도 개탄스럽다. 비록 조카라고는 하지만 병역 문제의 중대성에 비춰볼 때 반 전 총장 역시 일정 부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반 전 총장은 조카의 병역기피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주현씨의 아버지인 반기상씨는 <한겨레>에 “형님(반 전 총장)도 아들이 병역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을 알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식적으로도 조카가 병역기피자로 체포영장이 발부되고 지명수배까지 받았는데 고위공직자였던 반 전 총장이 몰랐을 리 없다.
문제는 그런데도 반 전 총장이 조카에게 국방의 의무를 다하라고 질책하거나 귀국을 종용한 흔적이 엿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카 주현씨가 징집 상한 연령을 넘길 무렵은 공교롭게도 반 전 총장이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내던 때다. 조카의 귀국을 종용하는 것은 고위공직자의 마땅한 의무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은 그런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유엔 사무총장 시절이던 2012년 4월 뉴욕에서 열린 조카의 결혼식에 참석해 축하해주는 ‘가족애’만 발휘했을 뿐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와는 거리가 먼 행동이다.
반 전 총장은 조카의 병역기피에 대해 아직 아무런 말이 없다. 단지 한 측근 인사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라고 말했을 뿐이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서 국가를 논하고 애국심을 입에 올릴 수는 없다. 그것은 병역기피 당사자는 물론 부모·형제, 가까운 친척 역시 마찬가지다. 더욱이 국가 최고지도자를 꿈꾸는 사람이 조카의 병역기피 사실을 눈감아주고 방관했다면 자격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조카의 병역기피 문제에 대한 반 전 총장의 명쾌한 입장 표명을 기대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