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박근혜 정부 출범 뒤부터 2015년까지 38개 보수·우익단체와 개인에게 사회협력회계에서 61차례에 걸쳐 25억여원을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돈을 건넨 단체는 어버이연합처럼 관제 시위를 주로 벌인 곳, 자유경제원 같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앞장서 주창한 곳, 미디어워치 등 보수 논객이 이끄는 매체 등이다. 주거래은행 계좌를 통해 돈을 보냈다고는 하나, 친정부 외곽단체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음성적인 자금지원 성격이 짙다.
지원 단체의 수가 2014년 1월 청와대가 요구했던 15개보다 훨씬 많다. 지원을 시작한 시기도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반면 전경련 은행 계좌에서 나간 액수는 25억원으로 재계가 동원한 전체 자금 규모에 견줘 적다. 이로 미뤄 보면 전경련이 회원들한테 회비를 걷어 운영하는 사회협력회계를 거치지 않고 재벌기업들이 직접 지원한 것도 적지 않을 듯하다.
전경련 상근부회장으로 이승철씨가 부임한 뒤부터 보수단체 지원사업을 칭송하고 지원 대상을 더 발굴하라고 했다고 한다. 재계는 일부 단체에 대한 지원은 거절했으나, 나머지 단체에 대한 지원은 순순히 따랐다. 청와대, 전경련, 재계 사이의 일그러진 관계가 보기에 민망할 정도다.
이런 일이 사회공헌 사업이란 이름으로 진행됐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재계 스스로도 그런 단체를 지원하는 게 떳떳하지 못한 일임은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자금지원 규모는 해마다 커졌는데, 어버이연합에 대한 자금지원 사실이 세상에 드러난 2016년 초부터는 지원을 멈췄다.
국제투명성기구가 1월 말 발표한 국가별 부패인식지수를 보면, 우리나라 청렴도 순위는 176개국 가운데 52위로, 전년도보다 15단계 떨어져 1995년 이후 역대 최하위를 기록했다. 정권에 부정적이라 하여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불이익을 주고, 친정부 단체엔 재계를 동원해 자금을 지원하는 구시대적 행태가 낳은 결과다.
합법적 지원의 탈을 썼다고 해서 어물쩍 넘어가선 안된다. 진상을 낱낱이 밝히고, 재발을 막을 수 있는 투명성 강화 장치를 만들어 낡은 시대와 단절해야 한다. 부정한 일을 꾀한 정치인·관료의 불법행위를 단죄하고, 재계는 전경련을 해체하고 환골탈태해야 한다. ‘권력의 피해자’라 강변하는 자세로는 재계도 수렁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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