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을 인적분할해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나누면서 자사주를 신주로 배정받으면 총수 일가의 그룹 지배력이 강화된다. 자사주의 의결권이 살아나 총수 일가가 사업회사를 지배하는 데 활용되기 때문이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지주회사 전환이 제도의 허점 탓에 악용되고 있다. 법 개정을 통한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
<한겨레>가 2001년 이후 지난해 9월 말까지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회사로 전환한 상장기업 54곳을 분석한 결과, 대주주(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평균 지분율이 지주회사 전환 전 31.7%에서 전환 뒤 54.3%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인적분할은 기업을 분할하는 방식의 하나로, 분할되는 기존 회사의 주주들이 지분율대로 신설 기업의 주식을 배정받는다. 자사주는 원래 의결권이 없지만 인적분할의 경우엔 의결권이 부활한다. 이 과정에서 총수 일가는 자기 돈을 한 푼 쓰지 않고 지분율을 높이게 된다. 세금도 붙지 않는다. 이를 흔히 ‘자사주의 마술’이라고 부른다. 제도의 허점을 최대한 활용한 것이다. 반면 소액주주들은 그만큼 권리를 침해당한다.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기업들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자료를 보면, 2014년 13개에서 2015년 20개, 지난해엔 9월 말 기준으로 25개에 이른다. 또 삼성그룹을 비롯해 경영권 승계 과정을 밟고 있는 여러 재벌들이 이를 준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 등을 검토하고 있으며, 6개월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삼성전자 지분율은 0.6%로 극히 미미하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과 계열사 지분을 합쳐도 18.8%에 그친다. 하지만 인적분할을 통해 지주회사로 전환되면 삼성전자 자사주 13.2%를 추가로 배정받아 의결권이 대폭 강화된다.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주식을 상속받을 때 납부해야 할 수조원대의 세금을 내지 않고도 사실상 경영권을 물려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의 상법 개정안과 박영선 의원의 법인세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 상법 개정안은 인적분할 때 자사주의 신주 배정을 아예 금지했고, 법인세법 개정안은 세금을 물리게 했다. 지주회사 전환의 취지는 살리되 역기능을 차단하는 쪽으로 법 개정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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