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사설

[한겨레 사설] ‘사상 첫 총수 구속’ 삼성이 직시해야 할 것들

등록 2017-02-17 17:39수정 2017-02-27 14:38

이건희 회장이 2014년 5월 뇌출혈로 쓰러진 뒤 삼성을 사실상 이끌어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7일 뇌물 제공 등 혐의로 구속됐다. 삼성상회 창업으로 시작된 삼성의 79년 역사에서 총수가 구속된 건 처음이다. 삼성은 2015년 59개 계열사 매출액이 271조9천억원에 이르는 국내 최대의 대기업집단이다. 그러나 그림자 또한 매우 짙다. 성장의 밑바탕엔 권력과 깊은 유착이 있었고, 막강한 경제력은 다시 권력을 움직이는 힘이 되었다. 그동안 그에 얽힌 비리가 드러난 게 한두번이 아니지만 ‘재계 순위 1위 삼성’의 총수들만은 구속을 면해왔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이 부회장 구속은 시대의 획을 긋는 사건이라 할 만하다. 그런 비리를 더는 국민이 용납하지 않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삼성은 정경 유착에서도 재계의 리더였다. 1961년 군사쿠데타 세력이 곧바로 ‘부정축재 기업인’들을 구속했을 때, ‘부정축재자 1호’로 지목된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일본 도쿄에 있었다. 그는 40일 만에 입국해 한국경제인협회 창립을 이끌었다. 그렇게 정경 유착의 고리를 만들어 처벌을 면했다. 그 단체가 얼마 전까지 삼성이 가장 많은 회비를 내서 지탱해온 전국경제인연합회다.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에서도 그는 무사했다.

뒤를 이은 이건희 회장은 전두환·노태우 비자금 제공 사건에서 불구속 재판을 받고 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2007년 말 불거진 ‘삼성 비자금 사건’의 결말도 똑같았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범죄 혐의가 명백한데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요구 촛불시위 현장에 크게 울려 퍼진 “재벌도 공범이다”란 분노의 목소리를 특검과 법원이 외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부회장에게 적용된 혐의는 뇌물 공여와 횡령, 재산 국외도피, 국회 청문회 위증 등 5가지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 부회장이 삼성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받기 위해, 승마 선수 육성을 명분으로 내세워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를 지원한 것에 뇌물죄를 적용했다. 보강수사를 거쳐 특검이 두 번째 영장을 청구하자 법원도 구속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했다.

사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청와대가 국민연금을 무리하게 동원하고, 삼성이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에게 몰래 거액을 지원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 사건의 핵심은 이미 다 밝혀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삼성은 ‘권력의 강요에 따른 피해자일 뿐’이라고 강변해왔다. 삼성 쪽은 여전히 “재판에서 진실이 밝혀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다. 인간의 정리로야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직 사태를 직시하지 못한 듯하여 안타깝다. 흘러간 옛노래를 부르듯 ‘총수 구속에 따른 경제 악영향’을 설파하다가 마지막엔 또 ‘국가 경제에 기여한 공로’를 들먹이며 선처를 호소할 텐가.

삼성뿐 아니라, 다른 재벌들도 시대의 대전환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특검이 아직 수사를 못 했을 뿐 롯데, 에스케이 등의 행태도 삼성과 비슷한 범죄 혐의가 짙다. 이제라도 권력과 재벌 간 결탁으로 점철된 낡은 시대의 문을 닫고,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 정경 유착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전경련을 해체하고, 강요에 밀려서가 아니라 스스로 지배구조를 선진화하고, 부패 고리를 끊기 위한 강력한 내부 통제 장치를 만들기 바란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