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이래 처음으로 총수가 구속된 삼성그룹이 28일 ‘경영 쇄신안’을 발표했다.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고 각 계열사가 자율경영을 하기로 했다. 미래전략실 최지성 실장(부회장)과 장충기 차장(사장)이 사임했고, 대관업무는 없앤다. 그룹 사장단 회의도 폐지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선 “사실상 그룹 해체”라는 평가까지 나오는데 과장됐다. 이재용 부회장 등 총수 일가가 순환출자를 통해 여전히 모든 계열사를 지배하는데 너무 지나친 의미 부여다.
그럼에도 미래전략실 해체와 계열사 자율경영 전환은 주목할 만하다. 미래전략실은 이병철 창업주 시절 비서실로 출발해 문패만 바꿔가며 60년 가까이 명맥을 이어왔다. 그룹 전체를 치밀하게 관리·통제해 ‘오늘날의 삼성’을 있게 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있는 반면, 세금 없는 경영권 승계를 위해 수많은 불법·편법을 저질러온 것 또한 사실이다. 총수의 힘을 배경으로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은 탓에 3대에 걸쳐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했다. 미래전략실 해체는 이런 과거와 단절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미래전략실이 없어지면 일시적 혼선이 따르겠지만 윤리경영 차원에서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는 경쟁력 강화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의구심은 남는다. 삼성은 이병철 창업주 이래 초대형 비리로 위기를 맞을 때마다 쇄신안을 내놨지만, 얼마 안 가 흐지부지됐다. ‘삼성 특검’ 직후인 2008년 4월에도 이건희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퇴진하고, 전략기획실 폐지와 계열사 자율경영을 선언했다. 전략기획실의 이학수 부회장과 김인주 사장이 물러난 것도 이번과 판박이다. 하지만 2년도 안 돼 이 회장이 복귀했고 그로부터 8개월 뒤 전략기획실은 미래전략실로 부활했다. 당시 이 회장이 진심으로 쇄신했다면 아들이 구속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번 쇄신안이 또다시 ‘일회성 이벤트’가 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이 부회장의 진솔한 반성과 단호한 의지가 필요하다. 황제경영과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삼성을 명실상부한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비장한 각오 말이다.
쇄신은 비단 삼성만의 과제가 아니다. 특히 에스케이·롯데·씨제이 등은 요행히 특검의 칼날을 피했지만 정경유착의 혐의가 짙다. 삼성을 시작으로 쇄신이 재계 전체로 퍼져야 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3일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대치동 박영수 특별검사팀 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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