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국제 무역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TO)의 결정을 무시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1일(현지시각) 의회에 제출한 ‘2017 무역정책 어젠다와 2016 연례보고서’에서 “세계무역기구 같은 국제기구가 미국의 혜택과 권리를 약화시키려 시도한다면 저항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이익과 상충된다면 세계무역기구의 분쟁조정 절차를 거치지 않고 중국 등 무역 상대국에 보복을 할 수 있다는 협박이다. 미국은 자유무역을 옹호하고 무역분쟁을 조정한다는 명분으로 1995년 세계무역기구 설립을 주도했다. 세계무역기구는 자유무역의 상징인 셈이다.
미국이 세계무역기구를 흔드는 배경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때부터 주장해온 ‘미국우선주의’가 있다. 무역대표부는 “미국 노동자와 농부, 기업을 해하는 그 어떤 불공정 무역 행위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도 취임 직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탈퇴하면서 미국우선주의에 기반한 양자 무역협정 추진 방침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정부의 일방통행식 통상정책은 국내외적으로 많은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미국이 세계무역기구 규정과 같은 국제 규범을 무시하면서 일방적인 보복 조처를 취한다면 상대국들이 반발해 ‘무역전쟁’을 부를 수 있다. 또 보호무역 장벽은 미국 소비자들이 질 좋은 수입품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다. 미국 소비자단체들이 트럼프 정부의 통상정책에 반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을 위해서도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무역대표부 보고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도 불만을 드러냈다. 무역대표부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시행된 최대 무역협정인 한-미 자유무역협정으로 한국과의 무역적자가 2배 이상 늘었다. 이는 미국인들이 기대했던 결과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보고서의 핵심 타깃이 중국과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이라고는 하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도 재검토 대상이 될 수 있다. 최대 교역 상대국인 중국으로부터 ‘사드 보복’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보호무역 공세까지 가세한다면, 우리 경제는 이중 삼중의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장기 침체로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큰일이 아닐 수 없다.
2월27일(현지시각)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전미 주지사 협회’ 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발언을 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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