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자국 이익만 앞세운 일방적인 통상정책을 노골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대미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네번째로 큰 우리나라도 이미 압박의 사정권에 들어섰다. 세계 경제 침체로 수출이 어려운데다, 주한미군 사드 배치로 중국이 경제보복 수위를 단계적으로 높여가는 상황에서 설상가상의 형국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통상정책 총괄 조직으로 새로 만든 미국 국가무역위원회(NTC)의 피터 나바로 위원장은 6일 미국 전국기업경제협회 총회 연설에서 “엘지전자와 삼성전자는 월풀이 두 회사를 상대로 한 반덤핑 제소에서 승소할 때마다 생산국을 다른 나라로 옮긴다”며 이를 ‘무역 사기’라고 비난했다. 생산비 절감이나 관세 혜택 등을 고려해 생산기지를 최적지로 옮기는 것은 기업이 판단할 일이다. 그러나 나바로는 그것이 “수천명의 미국인을 실직 상태에 빠뜨리고, 미국의 월풀 같은 회사에 수백만달러의 손실을 끼친다”는 ‘미국 이익 우선’ 논리만 폈다.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은 7일 미국의 1월 무역적자가 많이 늘어난 것을 거론하면서, “앞으로 몇 달 안에 나쁜 무역협정들을 재협상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미국의 요구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이 높은 외국 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지어 일자리를 만들라는 것이다. 또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많이 내는 나라들은 미국 상품을 더 많이 사 가라는 것이다. 그런 요구가 비효율적인 투자로 이어지거나, 국가 간 이익 균형을 해쳐 교역을 위축시키고 나아가 세계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지적엔 아예 눈을 감아버린다.
이런 형편이니 합리적인 논거로 미국 정부를 설득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삼성전자와 엘지전자는 미국에 가전 공장을 짓겠다는 뜻을 일찌감치 밝혔다. 수익성 확보가 어려울 수 있음에도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의 경제보복 조처도 한층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가진 역량을 효율적으로 동원해 지혜롭게 대처하는 것밖엔 달리 방법이 없다. 신속히 통상정책 컨트롤타워부터 정비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산업부의 ‘실’ 단위로 축소해버린 통상정책 조직을 부처 간 협의를 이끌고 조율할 수 있는 수준으로 확대 보강하는 것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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