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파면으로 60일 안에 대통령을 새로 뽑아야 하는 조기 대선의 막이 올랐다. 각 정당은 이르면 이번주부터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 일정을 시작한다. 조기 대선이 전례 없는 일인 만큼 정치권과 선관위 모두 혼선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실무적 준비보다 더 중요한 건,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19대 대통령 선거의 시대정신을 선거 과정에서 온전하게 드러내는 일이다. 이번 대선은 우리 사회가 한 단계 전진하는 분명한 이정표가 되어야 한다.
대선의 시대정신을 놓고선 다양한 주장과 견해가 격돌할 것이지만, 그 밑바닥을 관통하는 흐름은 ‘촛불집회로 표출된 시민의 개혁 열망’을 담아내는 것이다. 어떤 정치세력이든 이 거대한 흐름을 구체화해서 제시하지 못한다면 유권자 지지를 얻기는 매우 어렵다. 선거란 기본적으로 그 시기 국민을 가장 잘 대변하는 정치인을 통해 그 바람을 현실화하는 과정임을 명심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무시하고 폭주하는 권력에 맞서 평화적으로 ‘조기 선거’라는 절차를 만들어낸 건 누가 뭐래도 ‘촛불’과 이를 지지한 국민의 힘이다. 그렇다면 촛불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와 광장에서 울려 퍼진 시민의 목소리를 선거에 반영하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안타깝게도 정치는 시민들의 뒤를 쫓아왔을 뿐, 앞서 나간 적이 없다. 앞으론 달라져야 한다. 촛불에 담긴 염원을 선거를 통해 정책화하고, 정당과 후보의 개혁 의지를 담금질하는 풀무로 바꿔내야 한다. 그래야 불의한 대통령의 탄핵이 우리 사회의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탄핵 직후인 지난 주말, 광장에 나온 시민들의 얘기에 정치권은 귀를 기울이길 바란다. 정경유착 근절과 국민 생명·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부의 탄생, 제왕적 대통령의 종언 등 시민들의 구호가 바로 지금 대한민국이 나가야 할 방향이다. 그것이 이번 대선을 관통하는 시대정신이고, 새로 출범하는 정부가 꼭 해내야 할 핵심 과제일 것이다.
야권은 물론이고 구여권에 기반을 둔 정당과 대통령 후보들도 이런 시대의 흐름을 깨닫고 선거 준비에 나서야 한다. 탄핵당한 대통령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기면서 재기를 꾀하려 해선, 이번 선거뿐 아니라 앞으로도 오랫동안 정치적 미래를 기약하기 힘들 것이다. 보수 이념을 밑바닥부터 재구성하고, 촛불에 담긴 개혁 열망을 적극 수렴하는 자세를 보이길 기대한다.
앞으로 60일도 안 되는 동안 촛불이 염원했던 우리 사회의 개혁이 모두 실현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최소한 그런 변화의 큰 걸음이 시작됐음을 확인하는 시간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조기 대선의 의미가 살아난다. 다가오는 대선은 대통령 한 사람을 뽑는 선거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총체적으로 바꾸는 변혁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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