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을 순방 중인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17일 ‘북한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대북 전략적 인내는 이제 끝났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는 않았으나 이제까지보다 강경한 쪽으로 가려는 듯하다. 하지만 세부 정책을 어떻게 조합하든 북한 핵·미사일 문제는 궁극적으로 대화와 협상을 통해서만 풀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지난 20년간 미국의 접근법은 실패했다’는 틸러슨 장관의 판단은 타당한 점이 있다. 북한이 다섯 차례 핵실험을 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공언할 정도로 핵 역량을 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전 접근법들을 뭉뚱그려 비난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으며, 과거와 전혀 다른 접근법이 얼마나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실제로 최근 미국 정부 안에서 거론되는 내용은 버락 오바마 정부의 실패한 정책인 ‘전략적 인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북 선제타격 등 전혀 현실성이 없는 군사조처 정도가 추가로 제기됐을 뿐이다.
과거 경험을 보면 대북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적어도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시도가 억제됐다. 문제는 대화 자체가 아니라 대화를 지속적이고 깊이있게 추진하지 않은 데 있다. 과거보다 북한 태도가 더 경색된 건 사실이지만 대화는 여전히 유용하다. 지금 한·미의 주된 정책 기조인 대북 제재·압박 강화와 중국 역할론이 거의 한계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더 그렇다. 게다가 미국은 중국 역할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대중국 대결을 강화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인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 주한미군 배치와 한·미·일 군사·안보 협력 강화를 밀어붙이는 것이 대표적이다.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풀려면 한·미·일과 중국·러시아 등 한반도 관련국의 접근 방식이 잘 조율돼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타협과 우리 정부의 의지다. 미국과 중국이 적어도 한반도 관련 사안에서는 대결을 멈추고 협력해야 하며, 우리 정부는 이를 뒷받침하면서 핵 해법 동력을 키워 나가야 한다. 최근 최대 현안이 된 사드 갈등을 빨리 해결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근혜 정부는 시야가 좁고 무리한 대북 정책을 추구해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악화시켰다. 지금의 대행 정부는 이런 정책에서 손을 떼고 정세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 미국·중국 등과 협력해 실질적 대북 대화·협상이 가능한 여건을 조성하는 것은 곧 출범할 다음 정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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