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의가 22일 ‘제19대 대선 후보께 드리는 경제계 제언’을 발표했다. 상의는 전경련이 또다시 정경유착의 진원지로 드러나 해산 위기에 놓이면서 사실상 재계를 대표하고 있다.
상의는 건의문에서 “금수저가 아니어도 노력하면 정당한 대우를 받는 한국 경제의 ‘희망 공식’을 복원해야 할 때”라며 “경제계가 먼저 기득권을 내려놓겠다”고 다짐했다. 상의는 한국 경제 재도약의 3대 틀로 ‘공정사회-시장경제-미래번영’을 제안했다. 특히 “국민이 일부 기업인들에게 부정적 시각을 가지는 이유는 불투명한 경영 관행과 불공정 거래, 특권의식 때문”이라고 반성했다. 좀처럼 인정하지 않던 치부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상의는 대안으로 시장을 통한 기업지배구조 개선, 비정규직 불이익 해소와 정규직 기득권 조정을 통한 고용의 이중구조 철폐, 사회안전망 확충,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등을 제시했다.
18대 대선을 앞두고 2012년 8월 내놓았던 ‘28개 정책 건의’와는 내용이 확연히 다르다. 당시 상의는 대기업 규제 강화 반대, 법인세 인상 자제, 노사관계 선진화, 비정규직 규제 완화, 파견 대상 업종 확대 등을 요구했다. 한국 사회의 개혁을 위한 고민이나 재계의 책임은 쏙 뺀 채 친기업적 요구만 일방적으로 늘어놓았던 것이다. 상의는 이번에 건의문을 만들면서 ‘기업 편향성’에 빠지지 않기 위해 보수뿐 아니라 진보 성향 학자들의 조언도 폭넓게 구했다고 밝혔다.
상의의 이번 건의문은 내용과 형식 모두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문제는 진정성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재벌 개혁에 대한 여론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혹시 상의의 건의문 발표가 재벌에 대한 비판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일회성 행사’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살 수 있는 분위기다. 실천을 통해 진정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시장에 맡겨 달라고 요구한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기업들이 그동안 정경유착, 황제경영과의 단절을 수없이 약속해놓고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상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재계는 이런저런 핑계를 들어 또다시 상법 개정을 무산시키려 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협조해 변화 의지를 국민에게 증명해 보여야 한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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