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국민계정 집계 결과 지난해 우리나라 가계는 이자수입보다 이자지출이 더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이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75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가계는 기업 부문에 노동력과 자본을 제공하고 임금과 이자·배당을 받아 소비를 하는 경제주체다. 이런 개념 규정을 무색하게 하는 가계의 이자수지 적자는 우리 경제가 그만큼 심각한 불균형 상태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해 가계는 36조1천억원의 이자수입을 얻었으나, 이자지출에 41조8천억원을 썼다. 지출이 수입을 5조7천억원가량 초과했다. 우선 시장 금리가 하락해 금융자산에서 나오는 이자수입이 감소했다. 반면 가계빚이 늘어나면서 저금리 상황에서도 이자지출은 크게 늘었다. 기업(비금융법인) 부문의 경우, 이자수지 적자 규모가 2012년 34조원에서 지난해 22조2천억원으로 크게 줄어 저금리의 혜택을 계속 보고 있다.
가계의 부채 의존 체질이 굳어져가고 있는 것은 큰 걱정거리다. 지난해 가계의 금융부채는 전년 말에 견줘 142조7천억원(10.03%) 늘어났다. 대출 증가 속도가 매우 가파르다. 이로 인해 가계의 소비 여력은 더욱 위축되고 있다. 이자수지가 20조원 흑자를 낸 2000년에 견주면, 지난해 가계 이자수지는 그때보다 26조원가량 악화했다.
이런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이미 이자 부담에 허덕이는 가계는 소비지출을 억제하고 있다. 내수가 쉽게 살아나기 어려운 형편이다. 가계부채가 더 늘어나면 내수 회복이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금융 부실로 이어질 수도 있다. 최근 제2금융권 대출이 크게 늘어나는 것은 나쁜 조짐이다.
지금 같은 저금리가 결코 지속될 수 없다는 점을 주지시켜 가계가 빚을 빠르게 늘리지 않도록 유도해야 한다. 대출 한도를 소득에 연계시키고, 부동산의 담보가치를 엄격하게 따져 대출을 억제해야 한다.
통화정책이나 금융정책만으로는 해결에 한계가 있다. 부동산 가격 안정, 가계소득 확충 없이 사태를 되돌리기는 어렵다. 부동산 경기 부양을 통한 단기 성장률 제고, 수출 대기업 지원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일단 멈추고, 경제 운용의 큰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한다. 지금은 기업이 아니라 ‘위험한 가계’에 눈을 돌려야 할 때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