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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겨레 사설] LA소녀상 판결에 침묵하는 외교부의 굴욕

등록 2017-03-30 17:48

미국 연방대법원이 27일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일본계 극우단체의 소송을 기각했다. 미주 한인단체들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일본의 전쟁범죄를 고발하고자 건립한 소녀상에 대한 일본의 끈질긴 방해 공작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2013년 7월 건립된 글렌데일 소녀상은 외국에 세워진 첫 위안부 소녀상이다. 2014년 2월 정체불명의 일본계 극우단체가 로스앤젤레스 연방지법에 철거 소송을 제기하면서 법정투쟁이 시작됐다. 법원은 1, 2심에서 모두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으나, 이 단체는 소송을 대법원까지 끌고 왔다. 일본 정부도 미 연방대법원에 제3자 의견서를 제출해 “소녀상은 미-일 동맹에 해를 끼칠 위험이 있다”는 협박성 주장까지 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판결 직후인 28일 정례브리핑에서 “매우 유감”이라고 논평했다.

우리 외교부의 조준혁 대변인은 같은 날 정례브리핑에서 ‘우리 정부 입장이 있느냐’는 질문에 “미 연방정부와 지방정부 간 권한 문제에 관한 법적 쟁점과 관련된 사안”이라며 “(외국) 법원 판결에 우리 정부에서 의견을 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29일 중국 외교부의 루캉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똑같은 질문에 “판결에 찬성한다. 위안부를 강제동원한 2차대전 일본 군국주의는 엄중한 반인도적 범죄”라고 말했다. 한국과 중국의 정부 대변인 논평이 뒤바뀐 것 같다. 소녀상을 중국에서 건립한 건지, 우리 동포들이 만든 건지 헷갈릴 정도다.

정부가 이처럼 ‘강 건너 불구경’ 자세를 취하는 건 ‘12·28 위안부 합의’를 의식한 때문으로 보인다. 합의안에는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을 자제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미 연방대법원에 소녀상 철거 의견서를 제출했고, 판결 뒤엔 “유감”을 표명했으며, 앞으로 계속 입장을 내겠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거꾸로 된 듯하다.

재외동포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소녀상을 세우고 일본 극우단체 소송에 휘말려 3년간 시달릴 때, 글렌데일 시의회는 “소녀상을 지키겠다”고 했고, 현지 법률회사 변호사들은 무료변론에 나섰다. 그동안 우리 정부는 뭘 했는가. 이젠 소녀상 판결에 “환영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한다. 할머니들께 죄송하고, 국제사회에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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