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최근 청와대 정무수석실 허현준 행정관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불러 조사했다고 한다. 경찰도 장기정 자유청년연합 대표에 이어 정광용 박사모 회장과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 등을 곧 소환 조사할 예정이다. 허 행정관은 이미 지난해 4월부터 전경련 자금으로 어버이연합 등을 관제시위에 동원한 혐의를 받아왔다는 점에서 늦어도 너무 늦은 전형적인 늑장수사다.
극우단체 간부들과 교감해온 허 행정관은 대통령 파면 직후엔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글을 올려 ‘아직 12척의 배’ 운운하는 등 불복 시위를 배후에서 조종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사고 있다. 청와대가 중심이 돼 극단세력을 동원한 ‘정치공작’을 벌인 정황이 뚜렷한데도 검경이 여전히 겉핥기식 수사를 벌이는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
공작정치를 기획·지시한 배후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큰 문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영장에는 박씨와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이른바 ‘블랙리스트’ 추진과 동시에 ‘화이트리스트’를 통한 우익단체 지원에 개입한 정황도 드러나 있다. 2014년 4월초 김 실장이 신동철 국민소통비서관에게 “우파에 대한 지원이 너무 없으니 중앙정부라도 나서 지원해야 한다”고 지시한 이래 6월초 신 비서관이 조윤선 신임 정무수석에게 “우파 지원 문제가 가장 큰 현안”이라고 보고하는 등 청와대 차원에서 조직적인 지원을 추진했다. 블랙리스트는 물론 화이트리스트도 대통령에게 그대로 보고된 것으로 보인다. 소통비서관실 소속 허 행정관의 극우세력 동원 역시 청와대 수뇌부의 지시를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조직적인 정치공작의 흔적은 ‘김영한 업무일지’나 국정원 문건 등에도 여러차례 나타난다. 우익단체들을 시켜 야당 의원을 고발하라고 지시하면 어김없이 그대로 실행됐다. 특히 자유청년연합은 이미 ‘박원순 문건’에 실명 등장한 이래 권은희 의원 고발에 나서더니 탄핵 국면에선 아예 대표가 야구방망이까지 들고 나섰다.
상황이 이런데도 검경이 허 행정관의 직권남용 혐의와 우익단체 대표들의 집시법 위반 혐의 등 개별 혐의에 대해서만 조사하려는 건 사실상 축소수사나 마찬가지다. 특히 ‘경찰에 수사권을 절대 못 넘기겠다’는 검찰이 늑장수사도 모자라 반쪽 혐의만 겉핥기로 수사하려는 것은 ‘수사권’ 운운할 자격이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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