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연합회(옛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상반기 신규 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를 보니, 올해 대기업 취업문이 지난해보다 더 좁아질 것 같다. 대기업 5곳 가운데 1곳(22.5%)이 대졸 신입사원을 한 명도 뽑지 않거나 채용 규모를 줄이겠다고 대답했다. 지난해 조사에선 같은 응답이 11.5%였는데, 올해는 갑절로 뛰었다. 지난해 청년 실업률이 9.8%로 2000년 이후 16년 만에 최고치에 이르렀는데, 올해는 더 나빠지는 것 아닌지 걱정스럽다.
대기업들이 올해 채용에 소극적인 것을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수출이 조금 호전될 기미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경기 전망이 썩 밝지 않은 게 사실이다. 60살로 정년이 연장되면서 퇴직자 수가 줄어 신규 채용에 소극적인 기업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기업들의 고용 기피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어서, 경기 탓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대기업들이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세금과 규제의 부담을 줄여달라고 그토록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고용은 기업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책무’라는 생각을 아예 머리에서 지워버린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지난해에도 대기업 실적이 나빠진 게 아닌데 30대 그룹 253개 계열사의 고용인원은 2만명(2.1%)이나 줄었다.
우리나라 임금노동자 고용에서 대기업 비중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 종업원 300명 이상 사업체에 고용된 사람의 비율은 2010년 16.4%에서 지난해 15.0%로 1.4%포인트 줄었다. 상용근로자만 보면 19.2%에서 16.8%로 2.4%포인트나 줄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대기업 고용 비중이 가장 낮은 축에 속하는데, 그조차도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기업 규모에 따른 임금 격차가 매우 크니, 이로 인해 소득 격차도 확대되고 있을 것이다.
우리 경제제도는 기업에 고용을 강제하지 않는다. 기업 스스로 사회적 평판을 의식하여 행동하게 하고, 여러 인센티브 장치를 통해 기업들이 좋은 일자리를 늘리도록 유도할 뿐이다. 그런데 최근의 고용 지표를 보면, 이런 유도 장치가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용은 기업의 사회적 책무’라는 인식을 다시금 일깨우고 공유해야 마땅하다. 정치인, 경제관료들이 이를 강조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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