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보유하고 있는 대우조선 회사채 절반을 주식으로 바꾸고 나머지는 만기를 3년 연장하는 채무조정안에 동의했다. 이로써 산업은행을 앞세워 정부가 추진하는 대우조선 구조조정의 가장 큰 걸림돌이 사라졌다. 17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채권자 집회에서 채권 출자전환과 만기 연장안이 통과되면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은 대우조선에 추가로 자금을 지원하게 된다. 대우조선은 유동성 위기를 넘기고 한번 더 회생을 모색할 기회를 갖게 된다.
정부는 채무조정안이 부결되면 피플랜(P-플랜, 회생형 단기 법정관리)을 적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번도 시행해본 적이 없는 피플랜을 그것도 대규모 조선회사에 적용하는 불확실성을 피하게 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국민연금이 산업은행과 끝까지 줄다리기를 하며 기금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 것도 평가할 만하다. 만기를 연장하는 회사채의 지급보증을 받지는 못했지만, 우선 상환은 최대한 보장받기로 했다. 물론 국민연금 기금이나 국책은행 돈이나 국민의 것이긴 마찬가지이나, 운영 주체들은 각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앞으로도 기금운용 의사결정에 빈틈이 없어야 한다.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대우조선 구조조정안은 채권자들이 2조9천억원의 채권을 출자로 전환하고, 8900억원의 채무 상환을 유예하며, 두 국책은행이 2조9천억원을 추가 지원하는 내용이 뼈대다. 정부는 대우조선에 추가 지원은 없다고 해놓고 촉박하게 일정을 잡아 추가지원안을 들이밀었다. 또 채권자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피플랜으로 가겠다고 협박하듯 몰아붙여 선택의 폭을 극도로 좁혔다. 결국 시간에 쫓겨 구조조정안이 최적인지 진지하게 따져묻지 못한 채 어물쩍 넘어가는 모양새가 됐다.
국민연금이 채무조정에 동의했다고 해서, 국민 돈을 수조원이나 추가 투입하는 구조조정안에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민연금은 기금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애썼을 뿐 구조조정안이 적절한지를 따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뒤 반드시 구조조정 전 과정을 뜯어봐야 한다. 두 국책은행은 대우조선에 투입한 돈을 최대한 회수할 수 있게 경영 관리에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