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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겨레 사설] 사교육 ‘긴급처방’-학벌사회 ‘근본처방’이 양날개다

등록 2017-04-21 17:16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늘 뜨거운 감자다. 자녀가 학생일 땐 누구나 교육 문제에 ‘투사’지만 그 시기만 지나면 무심해진다. 입시제도 개편은 해당 연령대의 첨예한 이해가 엇갈린다. 그렇다 해도 교육 문제가 임계치에 달했음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교육이 계급 재생산의 통로가 되어버렸다는 말이 나온 지 오래다. 교육 불평등 해소는 교육 분야의 가장 시급한 과제다.

직접적으론 격차가 갈수록 확대되는 사교육 탓이 크다. 지난해 우리나라 사교육비 총규모는 공식 통계로만 약 18조1000억원, 실제로는 32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5만6000원으로 고소득과 저소득층 격차가 9배에 달한다. 이는 사교육을 받지 않는 학생을 0원 지출로 잡아 산출한 수치로, 자녀가 둘 되는 가정에선 월 100만원 지출도 흔한 일이다.

긴급한 현실에 비추어 주요 대통령후보들의 대책은 느슨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 모두 외고·자사고 폐지, 고교 학점제나 수강신청제, 무학년제 도입 등을 통한 공교육 강화를 내세웠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직업 탐색 기간을 보장하는 5-5-2 학제 개편이 사교육을 혁명적으로 줄일 것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사교육엔 ‘남들도 다 하는데…’ ‘내 아이만은’ 같은 개개인의 불안과 욕망이 크게 작용한다. 막연한 학교교육 정상화를 대책으로 내미는 건 응급환자에게 운동과 영양제만 권하는 것과 다름없다. 대선 경선 과정에서 남경필 경기지사가 제안했던 ‘사교육 폐지 국민투표’까진 아니더라도 이른바 ‘나쁜 사교육’에 대한 긴급처방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최근 문재인 후보 쪽이 학원 선행학습 제한과 학원 휴일휴무제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은 주목된다.

근본적으론 학벌사회 철폐 또는 완화 없이는 어떤 대책도 공염불이 되기 십상이다. 학생부 전형을 둘러싼 논란에서 보듯, 이제까지 훌륭한 취지로 도입했던 수많은 제도들이 결국 또다른 형태의 사교육 경쟁으로 귀결되곤 했다. 특히 취업난과 일자리 간 임금 격차가 심각해진 최근 몇년 사이 학벌이 생존을 위한 마지막 ‘비빌 언덕’처럼 여겨지며 이런 현상은 더 악화되고 있다.

대학 서열화 완화를 겨냥한 공약으론 문재인 후보의 공동학위제 등을 포함한 ‘한국형 네트워크 대학’, 심상정 후보의 통합전형까지 염두에 둔 대학네트워크 3단계 안이 눈에 띈다. 반면 안철수 후보는 인위적 조정보다는 대학의 자율에 방점을 찍고 있다. 네트워크 안은 학벌사회 완화를 향한 물꼬를 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지만, 취업에서 차별이 사라지지 않는 한 ‘하향 평준화’ 내지 ‘서울대가 아닌 또다른 명문대 줄세우기’란 우려를 잠재우기 어렵다. 심상정 후보의 학력학벌차별금지법 공약이 주목되는 건 이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모순이 응집되어 있는 교육 불평등 문제는 교육정책의 울타리 안에서 몇몇 제도 도입만으로는 일거에 해소할 수 없다. 문재인·안철수·유승민 후보가 공약한 국가교육위원회와 같은 기구 설치가 교육의 장기적 목표와 철학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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