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법부’가 위기를 맞고 있다. 사법행정권을 남용해 법관의 독립을 위태롭게 하더니 이번엔 법원행정처 차장이 청와대 민정수석과 빈번하게 통화한 사실이 드러났다. 청와대와 내통해 사법부 독립조차 스스로 훼손해온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살 만한 일이다. 이미 국제인권법연구회 탄압 의혹과 관련해 곳곳에서 법관회의가 열려 해명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양 대법원장은 침묵을 계속해오던 터다. 이제는 사법부 독립과 법관 독립을 위협해온 여러 의혹에 대해 양 대법원장이 분명하게 밝히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한겨레> 취재에 따르면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올 1월까지 1년간 통화내역을 조회한 결과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이 “수시로, 빈번하게” 연락을 주고받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나이나 사법시험 기수 등에서 차이가 커 개인적 친분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 두 사람이 자주 연락한 사실 자체가 의혹을 낳는다.
지난해 공개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업무일지에서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 지시로 보이는 대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법원 지나치게 강대, 공론화 견제수단 생길 때마다 다 찾아서 길을 들이도록(상고법원, or)’ ‘법원 지도층과의 커뮤니케이션 강화’ 등의 표현이 눈길을 끈다. 양 대법원장이 상고법원 설치를 역점사업으로 추진한 사실에 비춰 보면, 이를 고리로 한 청와대와 대법원의 부적절한 거래 의혹을 지울 수 없다.
국제인권법연구회 탄압 의혹과 관련해서는 4월26일 서울동부지법이 판사회의를 열어 양 대법원장의 입장 표명과 전국법관회의 개최를 요구한 것을 시작으로 판사들의 진상 규명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4월28일 서울남부지법과 대전지법, 1일 인천지법과 대구지법, 2일 창원지법에 이어 8일과 15일엔 수원지법과 서울중앙지법에서도 판사회의가 열린다. 행정처가 컴퓨터 조사를 거부하는 등 블랙리스트 의혹을 해소하지 못한데다 ‘사법행정권 남용’에 대해서도 납득할 만한 후속 조처가 없기 때문이다.
일부에서 이번 사태를 법원 내부의 진보-보수 갈등으로 호도하고 있으나 법관 독립 훼손이라는 사건의 본질과 동떨어진 주장이다. 석연찮은 행보로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의 폐해와 여러 의혹을 증폭시킨 양 대법원장 스스로 결자해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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