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납품업체에 대한 대형 백화점의 ‘갑질’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6월 백화점들이 더는 갑질을 하지 않겠다며 ‘거래관행 개선방안’을 발표했지만 말뿐이다. 일차적으로 백화점의 잘못이지만, 봐주기 조사나 솜방망이 처벌로 갑질을 사실상 방조하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책임도 크다. 불공정 거래를 뿌리뽑으려면 공정위부터 개혁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공정위는 3일 롯데, 현대, 신세계, 이랜드 계열 엔씨(NC), 한화갤러리아, 애경 계열 에이케이(AK)플라자 등 6개 백화점이 계약서 늑장 교부, 인테리어 비용과 판촉행사비 부당 전가, 판매수수료 불법 인상, 판촉사원 부당 파견, 경영정보 불법 요구 등 ‘대규모유통업법’을 위반한 사실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공정위는 이번엔 그동안 상대적으로 감시를 덜 받은 중위권 3개사를 집중 조사했다고 밝혔다. 엔씨와 에이케이는 납품업체에 인테리어 비용을 부당하게 떠넘기고 계약기간 중에 판매수수료를 1~12%포인트 올렸다. 엔씨는 또 계약서에 없는 판촉행사 비용을 납품업체에 부담시켰고, 납품업체가 다른 백화점에서 올린 매출액 등 경영정보도 요구했다. 롯데와 한화는 일방적인 판촉행사비 전가, 현대는 계약서 지연 교부, 신세계는 판촉사원 부당 파견 등이 드러났다. 피해 업체가 3688곳에 이른다.
하지만 공정위의 제재는 솜방망이에 그쳤다. 6개 업체에 모두 22억5천만원의 과징금을 물렸다. 1곳당 평균 3억7500만원이다. 갑질을 엄벌하기 위해 과징금 최고 한도를 관련 납품금액의 100%로 정한 ‘대규모유통업법’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다. 한 예로 엔씨백화점의 판매수수료 불법 인상의 경우 관련 납품금액이 83억원인데 과징금은 2억원(2.4%)만 부과했다.
백화점들이 갑질을 되풀이하는 것은 불공정 거래로 얻는 이익이 과징금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과징금 수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약하고, 특히 반복적 위반에 대한 가중 처벌이 미흡하다. 납품업체·가맹점·대리점 등 경제적 약자들이 ‘공정위가 아니라 불공정위’라고 강하게 비판하는 이유다.
주요 대통령 후보들이 공정위 개혁을 약속하고 있다. 공정거래법 위반을 공정위만 고발할 수 있게 한 전속고발권 폐지가 대표적이다. 공정위를 바로 세우는 일이 경제민주화의 첫발이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