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대 규모 법원인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들이 15일 회의를 열어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대한 양승태 대법원장의 입장 표명과 전국법관대표회의 소집을 요구했다. 전국 18개 법원 중 열두번째 회의이고 앞으로 수원과 전주지법 등도 회의를 열 예정이어서 판사들의 움직임은 계속 확산되고 있다. 그 정도로 판사들이 이번 사건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뜻인데도 양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는 대법원공직자윤리위에 사건을 넘긴 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윤리위는 윤리 관련 사항에 대한 ‘심의 및 의견제시’ 권한밖에 없다는 점에서 대법원 수뇌부의 이런 태도는 스스로 내부 소통 기회를 봉쇄하고 결자해지의 기회마저 걷어차는 꼴이다.
서울중앙지법 판사들은 회의 뒤 낸 ‘결의사항’을 통해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과 법관들의 학술활동에 대한 침해는 법관의 독립이란 관점에서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심각한 사태”라고 규정했다. 블랙리스트 논란에 대해서도 “관련자들의 업무용 컴퓨터 조사 등을 포함해” 의혹들을 추가 조사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앞선 다른 법원 판사들의 회의 결과도 이와 비슷하다.
그러나 양 대법원장은 진상조사위 결과 발표 뒤 이아무개 양형위 상임위원만 대기발령하고 사건을 공직자윤리위에 넘기는 데 그쳤다. 국제인권법연구회 행사를 앞두고 행정처 차원에서 대책회의를 열고 대응문건까지 만들었는데도 대법원장이나 행정처장은 무관하다는 듯 안이하게 대응했다. 행정처가 업무용 컴퓨터 조사를 거부한 데 대해선 아직도 설득력 있는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공직자윤리위가 제한된 수준의 권한만 갖고 있는데다 컴퓨터 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여서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처럼 법원 안팎에서 ‘양승태 대법원’에 대한 불신이 심각한 상황에서 대법관 2명에 대한 인선 절차가 시작됐다. 대법원은 퇴임한 이상훈 대법관과 퇴임 예정인 박병대 대법관 후임을 22일까지 공개 추천받고 있다. 대법관후보추천위가 3배수 이상을 추천하면 이 가운데 1명을 대법원장 제청을 받아 대통령이 지명하게 된다. 그간 보수 편향이란 지적을 받아온 ‘양승태 대법원’이 법원 안팎의 우려를 씻고 사법개혁 요구에 걸맞은 인선을 할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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