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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겨레 사설] 봉하마을에서 ‘국민 모두의 정부’ 다짐한 문 대통령

등록 2017-05-23 17:56수정 2017-05-24 09:58

8년 전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은 충격의 비보를 놀라우리만큼 침착하고 절제된 태도로 전했다. 그 의연한 모습은 국민에게 깊이 각인됐고, 마침내 ‘친구 문재인’은 현직 대통령 자격으로 추도사를 하기에 이르렀다.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을 보며 많은 이들이 새삼 감회에 젖는 건 두 사람의 이런 인연 때문일 것이다.

문 대통령 추도사는 짧지만 굵직한 울림을 남긴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좌절된 꿈, 그리고 자신이 다시 이뤄내고자 하는 꿈을 얘기했다. 민주주의와 인권과 복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나라, 지역주의와 이념갈등, 차별의 비정상이 없는 나라…, 그렇게 특별할 것도 없는 목록이다. 문 대통령은 “이제 그 꿈이 다시 시작됐고 우리는 다시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능하고 성공한 정부를 만들겠다는 다짐의 첫 단추로 성찰을 꼽은 건 의미 있다. 문 대통령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김대중, 노무현 정부까지, 지난 20년 전체를 성찰하며 성공의 길로 나아가겠다”고 했다. 진보·보수 가리지 않고 역대 정부의 성공은 나침반으로 삼고 실패는 거울로 삼겠다는 뜻을 강조한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실패 사례와 한계까지도 인정할 건 인정하고 참고할 건 참고하겠다는 얘기다.

통합과 소통, 그리고 설득을 강조한 대목도 인상적이다. 문 대통령은 “저의 꿈은 국민 모두의 정부,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손을 놓지 않고 국민과 함께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지하지 않았던 이들로부터도 박수를 받으며 물러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한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통합 대통령’ 다짐은,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나온 말이기에 더욱 뜻깊고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깨어 있는 시민’을 향해선 ‘확장’을 요청했다. “참여정부를 뛰어넘어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 나라다운 나라로 확장하자. 노무현 대통령님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이제 가슴에 묻고 다함께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보자”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을 마지막으로 재임 중엔 추도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다시 찾아뵙겠다”고 말했다. 집착과 슬픔을 뛰어넘고, 울분과 분노도 걷어내고 오로지 ‘노무현의 좌절된 꿈’을 이루는 데 함께 나가자는 뜻으로 읽힌다.

다음은 문재인 대통령의 추도식 인사말 전문이다.

<문재인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 인사말>

8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이렇게 변함없이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해주셔서,

무어라고 감사 말씀 드릴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대선 때 했던 약속,

오늘 이 추도식에 대통령으로 참석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킬 수 있게 해주신 것에 대해서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노무현 대통령님도 오늘만큼은,

여기 어디에선가 우리들 가운데 숨어서,

모든 분들께 고마워하면서,

“야, 기분 좋다!” 하실 것 같습니다.

애틋한 추모의 마음이 많이 가실만큼 세월이 흘러도,

더 많은 사람들이 노무현의 이름을 부릅니다.

노무현이란 이름은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세상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아파했던 노무현의 죽음은

수많은 깨어있는 시민들로 되살아났습니다.

그리고 끝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었습니다.

저는 요즘 국민들의 과분한 칭찬과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뭔가 특별한 일을 해서가 아닙니다.

그냥, 정상적인 나라를 만들겠다는 노력,

정상적인 대통령이 되겠다는 마음가짐이

특별한 일처럼 되었습니다.

정상을 위한 노력이 특별한 일이 될만큼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심각하게 비정상이었다는 뜻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의 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와 인권과 복지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나라,

지역주의와 이념갈등,

차별의 비정상이 없는 나라가 그의 꿈이었습니다.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대통령부터 초법적인 권력과 권위를 내려놓고,

서민들의 언어로 국민과 소통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상은 높았고, 힘은 부족했습니다.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노무현의 좌절 이후 우리 사회,

특히 우리의 정치는

더욱 비정상을 향해 거꾸로 흘러갔고,

국민의 희망과 갈수록 멀어졌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꿈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노무현의 꿈은 깨어있는 시민의 힘으로 부활했습니다.

우리가 함께 꾼 꿈이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다시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김대중, 노무현 정부까지,

지난 20년 전체를 성찰하며

성공의 길로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의 꿈을,

참여정부를 뛰어넘어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 나라다운 나라로 확장해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님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이제 가슴에 묻고,

다 함께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봅시다.

우리가 안보도, 경제도, 국정 전반에서

훨씬 유능함을 다시 한 번 보여줍시다.

저의 꿈은 국민 모두의 정부,

모든 국민의 대통령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손을 놓지 않고

국민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개혁도, 저 문재인의 신념이기 때문에,

또는 옳은 길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 눈을 맞추면서,

국민이 원하고

국민에게 이익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나가겠습니다.

국민이 앞서가면 더 속도를 내고,

국민이 늦추면 소통하면서 설득하겠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못다한 일은

다음 민주정부가 이어나갈 수 있도록

단단하게 개혁해나가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당신이 그립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앞으로 임기동안

대통령님을 가슴에만 간직하겠습니다.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입니다.

이제 당신을 온전히 국민께 돌려드립니다.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임무를 다한 다음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때 다시 한 번,

당신이 했던 그 말,

“야, 기분 좋다!”

이렇게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십시오.

다시 한 번 참석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꿋꿋하게 견뎌주신 권양숙 여사님과 유족들께도

위로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 5월 23일

대통령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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