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공판에서 2년 전 삼성물산 주식 처분과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결재까지 났던 결정사항이 뒤집힌 과정이 생생히 드러났다. 특히 공정한 시장경제의 파수꾼이 되어야 할 공정위 고위 관료가 삼성 쪽과 거의 ‘실시간’으로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행태는 충격적이다.
공판 내용과 공정위 실무진이 작성한 업무일지 등을 보면, 김학현 당시 부위원장은 2015년 11월 김종중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과 만난 뒤 실무진에게 결정사항을 재검토할 것을 지시했다. 당시 삼성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으로 순환출자 고리가 새로 발생하거나 강화돼 이를 금지하는 개정 공정거래법 9조 2항의 첫 적용 사례가 된 상황이었다. 그 전달 공정위는 삼성에스디아이(SDI)와 삼성전기가 모두 1천만주의 삼성물산 주식을 처분해야 한다고 결론내리고 위원장·부위원장의 결재를 받은 뒤 삼성 쪽에 비공식 통보를 했는데, 이를 뒤집으려 한 것이다.
김 전 부위원장은 시행 초기 법 해석에 혼란이 있던 과정을 바로잡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당한 민원수렴 절차’로 보기에 그가 김종중 사장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는 너무나 친절하다. 2015년 12월 공정위 전원회의가 열리기 8일 전엔 ‘현재론 다음주 16일 전원회의에서 논의할 것 같음’이라고 알려줬다. 회의 당일 밤과 다음날엔 통화를 했다. 공정위 부위원장 출신 삼성 쪽 변호사와도 수차례 통화했다. 공정위가 최종적으로 삼성물산 주식을 500만주만 처분하라는 결정을 내리기 사흘 전엔 삼성에스디아이의 주식처분 결정이 무리하다고 주장해온 김 사장에게 ‘삼성전기 쪽이 더 해석의 여지가 있다’는 취지의 문자를 보내기까지 했다. 그 어떤 민원인에게 공정위 부위원장이 이런 ‘상담’을 해준단 말인가.
새 정부가 김상조 교수를 공정위원장으로 지명한 뒤 공정위 위상이 더 강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최근 업무보고에서 공정위는 대기업의 하청업체에 대한 납품단가 ‘후려치기’와 대형 유통업체의 ‘갑질’ 근절 강화를 강조했다. 그러나 공정위 공무원들이 대기업·재벌과 ‘밀착’된 과거 행태와의 결별 의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지 않는 한, 법 해석과 적용에 광범위한 권한을 가진 공정위의 결정을 둘러싼 논란은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 내부개혁 없이 재벌 감시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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