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성 경찰청장이 5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시위 현장에서 살수차(물대포)의 직사 살수를 금지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청장의 이런 발언은 수사권 조정에 앞서 인권친화적 경찰로 거듭나라는 새 정부와 국민의 요구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나 다름없다. 경찰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다.
‘직사 살수’는 백남기 농민 사건 이후 첨예한 쟁점으로 떠오른 사안이다. 백남기 농민은 2015년 11월 도심 시위 도중 경찰의 ‘직사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뒤 317일 만에 숨졌다. 이 사건으로 경찰의 물대포 사용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어났다. 지난해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직사 살수 자체를 못하게 하고 물대포에 최루액을 혼합하는 것도 금지하는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또 올해 1월에는 국가인권위원회가 ‘개인의 신체와 생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사람을 향한 직사 살수를 금지해야 한다’고 밝히고, 경찰관 직무집행법을 개정하라는 의견을 국회의장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경찰이 인권에 관심이 있었다면 최소한 인권위의 권고가 나왔을 때 즉각 부응했어야 했다. 그러나 경찰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다가 새 정부가 들어서고 청와대가 경찰에 인권친화적 경찰상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 실행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할 무렵에야 마지못해 변화에 나섰다. 그런데 이런 뒤늦은 변화조차도 국민의 눈높이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직사 살수를 고집하겠다는 이 청장의 발언은 ‘인권 최우선’이라는 시대의 요구에 따르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이래서야 국민이 어떻게 경찰을 믿고 수사권을 주어도 되겠다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이 청장은 이날 살수차 이름을 ‘참수리차’로 바꾸겠다는 발표도 했다. 살수차의 어감이 좋지 않다는 여론이 있어 ‘참되게 물을 사용한다’는 의미로 ‘참수리차’로 부르기로 했다는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썩은 생선을 그대로 두고 포장지만 교체하는 꼴이다. 이름을 바꾼다고 해서 문제의 본질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세 살 먹은 아이도 안다. 경찰은 국민을 속이는 짓을 그만두고, 인권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보호하는 방향으로 내부 지침을 뜯어고쳐야 한다. 국회는 이미 발의된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안 통과에 온 힘을 기울이기 바란다. 경찰의 자체 개혁만 믿고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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