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러시아 게이트’ 수사 중단 압력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코미 전 국장의 폭로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5개월 만에 최대의 위기에 몰렸다. 미국은 현직 대통령이 탄핵 요구에 휘말려 ‘식물 상태’에 빠질 수도 있는 중대한 상황을 앞에 두게 됐다.
코미 전 국장이 상원 청문회에 앞서 공개한 ‘모두발언문’ 내용은 트럼프를 직접 겨냥하는 것이어서 충격적이다. 코미는 2월14일 독대에서 트럼프가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한 수사에서 손을 떼라고 요구했다고 확인했다. 플린은 지난 대선에서 러시아와 트럼프 캠프 사이 내통 의혹의 몸통으로 지목된 사람이다. 또 코미는 트럼프가 ‘임기를 마치고 싶다면 충성을 보여라’고 한 사실도 폭로했다. 마피아 보스나 할 법한 저열한 협박이 아닐 수 없다.
코미의 증언으로 사태는 임계치를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코미 압박이 대통령 탄핵 사유인 사법방해죄에 해당한다는 것이 중론인 만큼 탄핵 움직임이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커졌다. 우선 미국 내부의 민심이 악화하고 있다. 트럼프의 지지율은 최근 34%까지 추락했다. 트럼프 행정부 내부의 이반도 커지고 있다. 상황은 특별검사 해임으로 몰락을 자초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경우와 유사해지고 있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부터 안으로는 ‘러시아와의 내통 의혹’에 시달리고 밖으로는 ‘미국 우선주의’와 안하무인 태도로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전세계에 불확실성을 키웠다. 지난달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에서 보인 무례하기 짝이 없는 언행으로 유럽의 격분을 샀다. 195개국이 서명한 파리기후변화협정을 일방적으로 탈퇴해 ‘미국이야말로 불량국가’라는 지탄을 받았다. 전세계가 트럼프의 오만에 넌더리를 내면서, 세계와 미국을 위해 트럼프가 없는 것이 낫다는 분위기가 짙어지고 있다. 트럼프에겐 사면초가의 상황이다.
트럼프 위기는 우리에게까지 파장이 이어질 수 있다. 트럼프가 궁지를 모면하려고 대외적으로 어떤 돌발 행동을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 정부는 사태를 예의주시하면서 한반도 정세를 포함해 한-미 관계를 잘 관리해 나가야 한다. 이달 말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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