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국민연금공단에 압력을 넣은 혐의(직권남용) 등으로 기소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이를 실행한 홍완선 전 공단 기금운용본부장에게 법원이 각각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재판장 조의연)는 8일 문 전 장관에게 “국민연금에 압력을 행사해 손해를 초래한 것은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밝히고, 불구속 상태이던 홍 전 본부장은 법정구속했다. 국내 최대 재벌 오너의 배를 불리려 국민들의 노후자금에 손해를 끼친 죄의 막중함에 비춰보면 그 정도 형량은 오히려 적절성에 의문이 들 정도다.
이번 판결은 박근혜-최순실 두 사람의 국정농단에 부역한 부패·무능 관료에 대한 첫 단죄일 뿐 아니라, 삼성 합병의 불법성을 법원이 공식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문 전 장관은 2015년 6월 박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으로부터 합병 찬성 지침을 전달받고 복지부 연금정책국장에게 국민연금공단의 의결권 행사에 개입하도록 지시하는 등 권한을 남용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재판부는 청와대 지시 여부에 대해서는 사실 여부를 판단하지 않았으나 문 전 장관이 부하 직원들에게 “삼성 합병이 성사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등 찬성 의결에 개입한 행위는 모두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봤다. 특히 “스스로 연금분야 전문가이면서 기금에 손해를 초래”한 책임을 무겁게 봤다.
이번 판결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뇌물죄 공판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박 전 대통령의 18개 혐의 중 삼성과 관련해선 합병 등 경영권 승계를 도와달라는 부정한 청탁을 받고 그 대가로 최순실씨 딸 정유라씨 승마 등 세 분야 지원을 위해 모두 433억여원(계약액 포함)의 뇌물을 받은 혐의가 적용됐다. ‘이재용의 청탁→박근혜의 지시→부당한 실행’ 등 세 단계로 구성된 사건에서, 이번 판결로 실행의 결과인 국민연금의 부당한 행위가 확인된 것이다. 여기에 “박 전 대통령이 연금공단 의결권 행사를 잘 챙겨보라고 했다”는 최원영 전 고용복지수석의 증언까지 있어 청와대 외압이 법원에서 인정될 가능성이 그만큼 커졌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박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두 사람의 재판 역시 철저한 진실규명을 통해 엄정한 단죄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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