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고 차가운 바다 밑에 1073일 동안 가라앉아 있던 세월호가 수면 위로 떠오른 지 석달이 되어간다. 가족과 국민의 간절한 바람이 하늘에 닿았을까. 지난 5월17일 고창석 교사를 시작으로 허다윤·조은화양, 이영숙씨 유해의 신원이 확인됐다. 세월호 현장수습본부는 이달 말까지 3~5층 객실 수색을 마치고 새달부터는 1~2층 화물칸 수색에 들어갈 예정이다. 박영인·남현철군, 양승진 교사, 권재근·혁규 부자 등 남은 5명을 단 하루라도 빨리 찾도록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
고 김관홍 잠수사는 평소 인터뷰에서 미수습자 9명의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리곤 했다. 20여년 경력의 잘나가는 민간잠수사였던 그의 삶은 2014년 4월 무작정 달려간 세월호 현장에서 바뀌었다. 선체에 들어가 희생자 시신 292구를 찾아내서 데려온 것은 오롯이 민간잠수사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며 하루 4~5번까지 물속에 들어갔던 그들에게 해경은 일방적으로 현장 철수를 통보하고, 숨진 잠수사와 관련한 법적 책임까지 물었다. ‘일당 백만원, 시신 한 구당 500만원의 인센티브를 받는다’는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 이후 잠수사들이 돈을 벌러 온 것처럼 오도하는 이들도 늘었다.
김관홍 잠수사는 골괴사 등 후유증과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대리운전기사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국회와 특조위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서고 세월호 집회에 빠지지 않았다. “저희는 그 당시 생각이 다 나요. 잊을 수 없고 뼈에 사무치는데, 사회지도층이신 고위 공무원께서는 왜 모르고 기억이 안 나는지….” 2015년 12월16일 세월호 특조위의 1차 청문회에서 모르쇠로 일관하던 공무원들을 향해 그는 절규했다.
오는 17일은 아내와 세 아이를 남긴 채 급작스레 세상을 떠난 김관홍 잠수사의 1주기다. 그는 촛불시위도 대통령 탄핵도 지켜보지 못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단원고 기간제 교사가 순직을 인정받는 등 ‘의인’들에게 차가웠던 세상은 바뀌었다. 하지만 그가 세월호 유가족 등과 함께 준비했던 ‘세월호 피해지원법’ 개정안은 아직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민간잠수사나 희생된 소방공무원, 진도 어민 등도 피해지원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될 이 개정안의 통과를 국회는 서둘러야 할 것이다. 토요일 저녁 서울 광화문 4·16 광장에선 그를 추모하는 문화제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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