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이 15일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 원인을 ‘병사’에서 ‘외인사’로 정정한 데 이어, 경찰이 16일 처음으로 사과를 했다. 고인이 2015년 11월14일 물대포를 맞고 317일 동안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이다 지난해 9월25일 세상을 떠난 지 9개월 만이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너무나 늦게 했다. 게다가 사과의 형식과 내용마저 유족의 아픔을 위로하는 데 미흡하기 짝이 없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경찰청에서 열린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경찰의 인권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기대가 높다”며 “오늘 이 자리를 빌려 그간 민주화 과정에서 경찰에 의해 유명을 달리하신 박종철님, 이한열님 등과 특히 2015년 민중총궐기집회시위 과정에서 유명을 달리하신 고 백남기 농민과 유가족분들께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딱 이 한 문장이다. 경찰 행사 인사말을 하면서 다른 민주열사들과 함께 고인을 뭉뚱그려 언급하고 넘어간 것이다. 경찰이 무엇을 잘못해서 고인이 목숨을 잃게 됐는지가 빠졌다. 고인의 큰딸인 백도라지씨는 “사과는 하지만 책임은 피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족에게 사과 발표 계획을 사전에 알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경찰이 알아서 사과를 하니 유족은 그냥 받아들이라는 식이다. 이번 사과가 검·경 수사권 조정을 의식한 ‘요식 행위’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백남기 투쟁본부’는 성명을 내어 “진정성이 보이지 않아 사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이 청장은 재발 방지를 위해 “앞으로 일반 집회시위 현장에 살수차를 배치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일반 집회시위의 정의도 불분명하지만, 무엇보다 고인의 사망 과정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의지를 찾아볼 수 없어 실망스럽다. 고인이 물대포에 쓰러진 직후 유족이 경찰 관계자들을 검찰에 고발했으나 1년 반이 넘도록 수사는 진척이 없고, 경찰은 검찰 수사를 이유로 자체 감찰에 손을 놓고 있다. 누가 어떻게 고인을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 진상을 낱낱이 밝혀내고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
서울대병원도 책임 회피라는 점에서 경찰과 다를 게 없다. 누가 봐도 명백한 사인을 왜곡해 유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도 15일 기자회견에서 반성과 사과가 없었다. 책임자인 서창석 병원장과 백선하 교수는 아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누가 무슨 이유로 사인을 ‘병사’로 둔갑시켰는지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따져야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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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성 경찰청장이 16일 오후 서울 미근동 경찰청에서 열린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인사말을 통해 고 백남기 농민과 유족에게 사과한 뒤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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