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23일 취임식에서 다주택 보유자들의 투기를 집값 급등의 원인으로 지목하며 단호한 대응 방침을 밝혔다. 취임 일성으로 ‘부동산 투기와의 전면전’을 선언한 셈이다. 투기를 뿌리뽑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라는 점에서 올바른 결정이다.
김현미 장관은 보통 덕담성 당부로 채워지는 취임사 대신 이례적으로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최근 주택 거래 동향을 설명했다. 집값이 급등한 5월 주택 매입자의 부동산 보유 현황을 조사했더니, 강남 4구에서 5주택 이상 보유자의 주택 매입 건수가 지난해 5월보다 무려 53% 증가했다. 임대사업자도 일부 포함됐겠지만, 이미 5채 이상 보유한 사람이 또 주택을 샀다면 정상적 거래와는 거리가 먼 투기적 거래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대상을 2주택 이상으로 확대하고 세대별로 합산까지 한다면 다주택자의 거래량은 훨씬 더 늘어날 것이다. 반면 무주택자와 1주택자의 주택 매입은 각각 -6%와 -1.7%로 되레 감소했다. 내집 마련이나 더 나은 집으로 이사 등을 위한 실수요자 거래는 줄어든 것이다. 또 강남 4구에서 경제적 능력이 안 되는 29살 이하의 주택 매입도 54%나 증가했다. 세금을 내지 않고 자녀에게 증여를 하기 위한 부유층의 ‘편법 거래’로 보인다.
부동산 시장에서 투기세력을 몰아내지 못하면 주택 공급을 아무리 확대해도 중산·서민층의 주거 불안을 해소하기 어렵다. 투기세력이 발 붙이고 있는 한 정책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국토부 통계를 보면, 주택 수를 가구 수로 나눈 ‘주택 보급률’은 전국 기준으로 이미 2010년 100%를 넘어 2015년엔 102.3%에 이른다. 서울도 100%에는 못 미치지만 96%는 된다. 반면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가구의 비율인 ‘자가 보유율’은 2016년 전국 기준 59.9%, 수도권은 52.7%에 불과하다. 부동산 시장이 투기 수요에 의해 심하게 왜곡돼 있음을 보여준다.
김현미 장관은 취임사에서 “아파트는 ‘돈’이 아니라 ‘집’이다”라고 강조했다. 주거가 목적이어야 할 집을 투기 수단으로 악용해 ‘내집 마련의 꿈’을 빼앗아가는 것은 범죄행위와 다를 게 없다. 12일부터 투입된 ‘정부 합동 단속반’은 자금출처조사 등을 통해 투기세력을 빠짐없이 걸러내야 한다. 이와 함께 다주택 보유자에 대한 보유세 강화와 양도세 중과, 다주택 보유자의 임대사업자 등록 의무화 등 제도 개선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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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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