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4형 연합뉴스
미국은 4일(현지시각) 북한이 시험발사한 ‘화성-14’형 미사일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공식 평가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성명에서 “북한의 아이시비엠 발사는 미국과 동맹국 및 협력국, 세계에 대한 새로운 위협”이라고 말해, 북한의 화성-14형 미사일을 아이시비엠으로 규정했다. 전날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로 평가했던 미국이 하루 만에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이에 따라 북 핵·미사일 상황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우리 군은 ‘아이시비엠급 신형미사일’로 평가해 다소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화성-14형의 사거리는 8천㎞ 이상으로, 미국 알래스카를 타격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러 미국은 물론 전세계의 긴장감이 이전과 다를 수밖에 없다. 꾸준히 핵개발을 해온 북한이 이를 실어 보낼 ‘운반수단’인 아이시비엠 시험발사까지 성공한 것은 동북아 전략균형을 밑둥치부터 흔드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아이시비엠 발사를 군사적 응징까지 내포하는 ‘레드 라인’으로 공식 설정한 적은 없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아이시비엠 발사 저지를 일종의 정책 목표로 제시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주 독일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대북 원유 수출 제한을 포함한 중국의 대북 제재를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틸러슨 국무장관이 “미국은 평화적 방식만으로의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의 위협적 행동에 대한 종식을 추구할 것”이라고 말해 군사적 행동 가능성은 제외시켰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행사하면서 북한을 ‘대화’로 인도하려던 문재인 정부의 구상을 흩뜨리고 있다. 오히려 한반도에서 미국과 중국의 영향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개될 여지가 다분하다. 문 대통령이 5일 한미연합사 최초로 탄도미사일 사격 등 무력시위를 먼저 제안해 실시한 것도 대북한 경고뿐 아니라, 이런 분위기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베를린에서 대화 복원을 주 내용으로 하는 전향적인 대북 메시지를 발표하려던 문 대통령 구상도 조정될 가능성이 높다. 유화적 메시지보다 강경한 목소리를 높일 개연성이 높아졌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북한을 대화 국면으로 끌고 나오려는 힘든 여정을 포기하진 말아야 할 것이다. 당장 대화의 문을 열기 힘들다 하더라도, 눈은 멀리 ’대화 국면’을 향해야 한다. 다만, ‘대화 국면’을 목표로 두되, 그 과정에서 ‘대화를 위한 제재’를 한층 강화해야 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이번 주요20개국 회의에서 열릴 한-중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중국에 대해서도 더욱 분명한 메시지와 방침을 전해야 한다. 우리 외교안보팀이 어느 때보다 치밀한 전략을 세워 주도적이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