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명. 올 들어 숨진 집배원 노동자 수다. 그중 5명이 자살이고 5명은 과로가 원인으로 추정되는 뇌출혈이나 심근경색, 2명은 교통사고였다. 집배원들에게 ‘죽음의 일터’는 단순한 수식어가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인력감축, 우체국 택배와 토요택배 도입 등이 이뤄지며 우체국은 가장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을 하는 일터 중 하나가 됐다. 전국집배노동조합 집계에 따르면 집배원들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2888시간,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55.9시간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충청권 우체국 근로실태를 조사해 발표한 걸 보면, 한 사람이 하루에 1천여통을 배달하고 추가 노동시간은 월 53.5~66.4시간에 이르렀다.
집배원들은 근무시간 내내 100미터 달리기 정도를 하는 심박수가 측정될 정도로 배달에 쫓긴다고 한다. 하지만 우정사업본부 쪽은 전체적으론 연평균 2531시간, 주당 48.7시간이라 맞서고 있다. 설령 우정사업본부 주장을 받아들여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연평균 1770시간은 물론 한국의 연평균 2285시간을 훌쩍 넘는 장시간 노동임엔 분명하다.
국가공무원인 집배원은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전체 1만8천여명 가운데 3500여명으로 20%를 넘는 비정규직 집배원도 근로시간 특례업종을 규정한 근로기준법 59조에 따라 법정 근로시간을 무한정 초과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가능하다.
21년차 집배원 원아무개씨는 지난 6일 정든 일터인 경기도 안양우체국 앞에서 분신을 택했다. 17일 저녁 그를 추모하기 위해 안양우체국 앞에 모인 전국집배노조 조합원과 시민단체 회원들은 우정사업본부가 중대재해 다발 사업장이라며 정부에 조사위원회 구성을 요구했다. 전국우체국노동조합 조합원들도 원씨의 사망원인 규명 등 국가 차원의 조사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했다.
국회는 우선 집배 업무를 특례업종에서 제외하도록 근로기준법 개정안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 현재 우정사업본부는 4천명 증원이 필요하다는 노동자 쪽 요구에 터무니없이 모자란 100명 증원만을 계획 중인데, 이조차 국회 추경안이 통과돼야 가능한 일이다. 집배원의 살인적인 노동조건을 완화하기 위해 국회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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