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청사진이 공개됐다.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19일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국정운영 5개년 계획’(보고서)을 발표하고, 국가비전과 5대 국정목표, 100대 국정과제를 제시했다. 이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재원 마련 방안, 입법 계획도 담았다. 짧은 선거 기간, 충분치 않은 수권 준비 절차 등의 여건에도 촛불 시민들이 현 정부에 부여한 시대적 요구를 국정운영 로드맵으로 적극 수렴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문재인 정부는 깨어 있는 시민의 각성과 촛불의 힘에 의해 탄생했다. 그렇기에 정치, 사회, 경제 등 여러 분야에 실질적인 대개혁을 이뤄내 대한민국을 ‘나라다운 나라’로 만들어야 할 역사적 소명을 짊어지고 있다. 정부가 국가비전으로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천명하고, 5대 국정목표로 국민이 주인인 정부, 더불어 잘사는 경제,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 고르게 발전하는 지역,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내세운 것은 이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들 과제를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487개 세부 실천과제 가운데 66%인 321개가 국회 입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입법부의 상황은 여소야대다. 문재인 정부는 이런 현실을 냉철히 인식하고 그 어느 때보다 유연한 협치와 통합의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개혁을 하려면 기득권과 충돌하고, 여러 이해관계자 사이의 갈등을 잘 조절해야 한다. 국정목표를 견지하면서도 사회적 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실행전략이 필요하다. 행정부 안에서도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한 경제부처가 일방적으로 끌고 가지 않고, 사회부처도 동등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제시된 국정과제엔 기초연금 30만원 인상, 아동수당 신설, 사회서비스 일자리 34만개 창출 등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의미있는 정책과제들이 많다. 하지만 아쉬운 대목도 적잖다. 이른바 제이(J)노믹스의 핵심인 일자리 창출과 노동존중 사회 실현을 위해선 정규직-비정규직으로 분할돼 있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과 함께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구체적인 전략이 제시되어야 하는데, 이번 보고서에서는 대선 공약보다 외려 후퇴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정책과제는 입법으로 실행의 근거를 갖추고, 재원을 통해 현실화된다. 보고서는 100대 국정과제를 이행하기 위해선 공약집에 썼던 것과 마찬가지로 5년간 178조원, 연평균 35조6천억원의 예산이 더 들어갈 것으로 추정했다. 이를 위해선 사실상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렇지만 이번 보고서에서도 비과세·감면 정비와 지출 구조조정을 내세워 증세를 통한 재원 조달은 피해갔다. 부실한 재원 대책을 보강해, 정부의 정책 의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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