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여자친구에게 폭행을 가하고 1톤 트럭을 몰고 돌진했던 22살 남성이 엊그제 구속되며, 데이트폭력에 대한 분노와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그나마 이번 사건은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었던 공개된 장소에서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신체적인 폭력을 가했기 때문에 이슈가 됐다. 연인이나 연인이었던 관계에서 발생하는 특성상, 데이트폭력은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데이트폭력’이란 개념이 본격 등장한 것 자체가 얼마 되지 않았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데이트폭력으로 입건된 건수는 2014년 6675건, 2015년 7692건에서 지난해 8367건으로 증가 추세다. 갑자기 늘었다기보다는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면서 신고가 늘어난 것이라 보는 게 타당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연인 사이의 폭력을 남녀 간 다툼이나 사랑싸움 정도로 여기는 시각이 흔하다보니, 피해자들 또한 폭력이라 인식하지 못하거나 상대가 사과하면 용서하는 일이 반복되곤 한다. 자신을 너무 잘 아는 상대방의 보복이 두렵거나 제대로 처벌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신고를 꺼리기도 한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지난해 발표한 데이트폭력 실태조사를 보면, 성인 여성 1017명 중 188명이 신체적 폭력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했지만 실제 신고로 이어진 건 30명에 불과했다. 가해자들은 흔히 데이트폭력의 이유로 ‘상대가 덤벼서’ 또는 ‘날 무시해서’라고 말한다. 여성을 자신의 지배나 통제 아래 둬야 한다는 심리가 기저에 깔려 있는 것이다. 성차별적 구조와 문화가 온존하는 사회, 연인 사이 폭력에 관대한 사회에선 데이트폭력의 ‘근본적 예방’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지난 10년간 연인을 대상으로 한 살인 범죄가 1천여건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데이트폭력이 재범률이 높고 살인까지 부를 수 있는 심각한 폭력이라는 사회적 인식과 함께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처벌을 강화하는 법적 논의가 필요하다. 미국은 여성폭력방지법을 통해 데이트폭력이 신고될 경우 즉시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한다. 한국엔 가정폭력방지법이 있지만 가족 구성원에 해당할 뿐 연인 사이엔 법적 근거가 없다. 데이트폭력의 대표적 유형인 스토킹 처벌 특례법도 1999년 이래 수차례 발의됐지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데이트폭력 방지와 처벌 강화를 위한 입법 논의가 국회에서 시급히 이뤄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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