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17 국가재정전략회의 첫날 회의에 참석해 환담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증세 방안을 마련하라고 기획재정부에 지시하면서, ‘증세 논의’가 본격화됐다. 앞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과표 2천억원 초과’ 기업의 법인세를 22%에서 25%로 올리고, 소득세도 5억원 초과 소득자에 한해 최고세율 40%를 42%로 올리는 방안을 제안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지난 19일 100대 국정과제를 제시하면서, 이행 재원을 178조원으로 추산했다. 기초급여를 10만원 인상하는 데에만 5년간 23조1천억원, 최저임금 지원에도 직간접적으로 연간 4조원이 각각 들어간다. 공공기관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 서민복지 확대, 아동수당 등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을 실현하기 위해선 세수 확보가 최우선 과제다.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층을 대상으로 세 부담을 늘리는 건 바람직한 방향이다. 법인세는 누진세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소득세도 초고소득자가 점점 늘어나므로, 과표구간을 더 늘려 최고세율을 적용하기에 무리가 없다. 그러나, 추 대표 안에 따르더라도 추가 세수는 연간 3조7800억원에 불과하다. 법인세를 더 내는 기업은 전체 법인세 신고기업의 0.02%(116개 기업), 소득세 인상을 적용받는 5억원 초과 소득자도 전체 경제활동인구(2800만명)의 0.14%(4만명)에 그치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은 민심 이반을 우려해 범위를 매우 좁힌 ‘핀셋 증세’를 강조한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2016년 한국의 조세부담률 19.4%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평균인 25.1%(2015년)를 크게 밑돈다. 복지 확대를 위해 조세부담률을 공평과세 원칙에 바탕을 두고 높여가야 한다. 초고소득자부터 증세를 하더라도, 단계적으로 상위 20% 등 고소득층 전반의 세부담을 늘리고, 나아가 법인세·소득세 모두 비과세 대상과 항목을 줄여 절반가량이 세금을 한 푼도 안 내는 비정상적인 납세 구조를 바꿔나가야 할 것이다. 임대소득 과세 정상화, 이자와 배당소득의 종합과세 전환, 부동산 보유세 인상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증세에 앞서 정부의 세출 구조 개혁이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증세는 정권에 큰 부담이다. 여당 일각에서 내년 지방선거 이후로 논의를 미루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임기 초반 문 대통령 지지율이 높은 지금이 ‘증세 골든타임’이다. 이때를 놓치면 추진이 쉽지 않고, 그러면 문재인 정부의 복지정책 실현은 힘들어진다. 문재인 정부가 세입안을 마련해 놓지 않으면 복지정책을 이어가야 할 다음 정부에도 큰 부담이다. 증세 논의는 문재인 정부가 ‘쓸 곳’이 많으니 무리해서라도 걷자는 식이 아니라, 세금에 대한 국민 인식을 새롭게 하고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한 첫걸음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