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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한겨레 사설] ‘갚지 못할 빚’에 쫓기는 사람들 재기의 기회 줘야

등록 2017-07-28 17:38

고금리로 돈을 빌렸다가 한번 연체하기 시작하면 빚의 수렁에 빠져드는 것은 순식간이다. 원리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갚을 엄두를 못 낸다. 그런 ‘약탈적 대출’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과거엔 허술했다. 1998년 외환위기 때 이자제한법을 폐지하면서 고리 대출이 합법화됐다. 2002년 대부업법을 제정했지만, 이자 상한선이 연 66%나 돼 약탈적 대출은 합법적으로 존속했다. 지금은 이자 상한선이 많이 낮아졌다. 빚을 제때 못 갚은 사람을 위한 개인워크아웃과 프리워크아웃 등의 회생 지원 프로그램도 가동되고 있다. 하지만 연체가 시작된 지 10년이 넘은 빚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이들이 여전히 많다.

국민행복기금이 채권자들한테 사들여 보유중인 부실채권을 보면, 2004~2006년 연체가 시작돼 지금까지 못 갚고 있는 채무자가 올해 3월말 기준으로 107만명이나 된다. 채무액은 13조원이다. 전체 채무자의 절반 가까이가 이에 속한다. 연체가 시작된 지 15년이 넘은 채무자도 29만명, 채무액은 3조원 남짓이다. 이 빚은 국민행복기금이 채권을 소각하지 않는 한 평생 채무자들을 따라다닐 것이다. 부실채권을 싼값에 사들인 뒤 채무자에게 돈을 받아내는 매입추심 대부업계가 보유한 장기연체 채권 규모도 1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돈을 못 갚을 채무자라면 재기·갱생을 지원하기 위한 파산·면책 제도를 활용하게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소송 비용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런 현실을 뻔히 알면서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 한다”는 원칙만 앞세우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약탈적 대출’에 미상환이 발생하는 것은 빌려준 쪽에도 적잖은 책임이 있다. 어차피 상환받지 못할 빚이라면 청산해주고, 채무자들을 정상적인 경제활동에 복귀시키는 게 나라경제에도 도움이 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26일 “국민행복기금·금융공공기관·대부업체 등이 보유한 장기 소액 연체채권에 대해 상환능력 심사를 거쳐, 상환이 어려운 계층은 과감하게 최대한 채무 정리를 돕겠다”고 밝혔다. 진작 그렇게 했어야 한다. 장기 부실채권을 소각 처리하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또, 한번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이 채권자의 잔꾀로 부활하지 않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불법 추심행위는 엄히 단속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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