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연간 세수 효과가 5조5천억원에 이르는 2017년 세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세수 효과가 10조5천억원이던 2009년 세제 개편안 이후 증세 규모가 가장 크다. 하지만 이 정도로 100대 국정과제 실행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는 데 지장이 없을지 의구심을 떨쳐내기 어렵다. 우선 내년 예산안에서 기존 정부 지출을 효율적으로 삭감해, 재원을 둘러싼 의구심을 해소해야 한다.
올해 세법 개정안은 일자리 창출과 일자리 질을 높이는 쪽에 세제 지원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근로장려금 지급액을 10% 인상하여 일하는 저소득가구 지원을 확대하고, 과세표준 3억원을 초과하는 소득에 대해 세율을 2%포인트씩 인상해 소득 재분배를 꾀했다. 법인세 과표 2000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해 세율을 과거 수준(25%)으로 환원한 것은 세입 기반을 확충하자는 뜻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법인세 인하를 필두로 한 ‘대기업 감세’, 박근혜 정부 시절 담뱃세 인상으로 대표되는 ‘서민 증세’와는 뚜렷이 대비되는 세제 개편 방향이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석달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 정도 철학을 담았으면 무난하다고 할 수 있다.
증세는 초고소득자와 초대기업에 부담이 집중된다. 세수 효과 5조5천억원 가운데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에 따른 것이 1조1천억원,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에 따른 것이 2조6천억원으로 두 세목에서 3조7천억원을 더 걷게 된다. 최고세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세제와 견줘 전혀 과하지 않다. 공평과세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
다만, 근로소득세의 경우 면세자 비율이 46.8%나 되는데, 이를 전혀 손보지 않은 것은 아쉽다. 5년 내내 일반 중산층과 서민들, 중소기업들에는 증세가 없을 것이라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말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곧 설치할 조세·재정개혁특별위원회에서 긴 안목으로 나라 살림의 앞날을 논의해야 한다. 복지 지출을 늘리기 위해 폭넓은 국민의 공감 속에 세금을 늘리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복지 지출을 크게 늘리면서도 증세는 소폭에 그친다면,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기존 정부 지출을 일부 삭감하지 않을 수 없다. 예산에 이해가 걸린 사람들의 반발과 압력이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우선순위를 잘 따져 ‘세출 구조조정’의 첫 단추를 잘 채우기 바란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