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2009년 5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민간인 3500명을 동원해 30개의 여론조작팀을 운영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특수활동비를 활용해 정권에 도움이 될 만한 여론조사를 진행하고 이를 근거로 정국 대응방향을 조언하는 보고서도 청와대에 냈다. 모두 ‘국정원 적폐청산 티에프’가 조사해 국정원개혁발전위원회에 보고한 내용이라고 한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정치관여 실상이 자체 조사를 통해 적나라하게 확인된 것이다.
그동안 온라인에 정체불명의 글이 올라올 때마다 ‘국정원 알바 아니냐’고 반박했던 게 대부분 사실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 역시 티에프 조사 대상 13건 가운데 일부일 뿐 박근혜 정권 아래서의 정치공작 의혹 등 나머지 사안들은 여전히 조사 중이다. 철저한 진상 규명과 처벌, 제도 개선 논의는 이제부터 시작인 셈이다.
국정원 댓글 사건 재판 4년여 동안 일부 첨부파일의 증거능력을 둘러싸고 다퉈왔으나 이제 거대한 음모와 공작의 실체가 윤곽을 드러낸 이상 전면적인 재수사가 불가피하게 됐다. 이미 드러난 문건과 증거자료만 봐도 이런 국정원 활동이 대부분 ‘이명박 청와대’의 재가 아래 진행됐을 가능성이 크다. 당연히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윗선’에 대한 엄정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한겨레> 등의 보도에 따르면 국정원 심리전단은 2009년 5월 포털사이트 다음의 토론방 ‘아고라’ 대응 외곽팀 9개를 신설했다가 2011년 1월 24개로 확대한 뒤 8월엔 이 중 10개 팀에 4대 포털 대응업무를 나눠 맡겼다고 한다. 예비역 군인이나 회사원·주부·학생 등 보수·친여 성향 민간인들을 알바로 동원해 인건비로 매달 3억원 가까이를 썼다는 것이다. 조직적인 여론조작으로 민의를 왜곡한 것은 정치개입 이전에 민주주의 파괴행위이자 국기문란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 정권에서도 국정원은 들통난 댓글 공작은 중단했을지 몰라도 민간인 사찰이나 정치공작은 계속했다. 화이트리스트와 우익단체를 동원한 정치공작의 실상 등 13개 사안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민주주의를 좀먹는 국기문란은 정권의 유불리를 따져 대응할 사안이 아니다. 국정원개혁발전위는 정치공작을 포함한 13건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
정치관여죄 등의 공소시효가 5개월밖에 남지 않은 이상, 검찰도 수사에 적극 나서야 한다. 청와대는 물론 검찰 내부의 부당한 사건 처리를 포함한 모든 사안을 성역없이 철저히 수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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