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이어지면서 전력 수요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으나 전력예비율이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많은데, 냉철하게 따져보면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전력 수요 전망을 크게 부풀려 발전설비에 과속 투자를 해온 결과일 뿐이다. 핵발전소를 더 짓자고 ‘전력 대란’ 운운하며 국민의 불안을 부채질하는 일은 더는 없어야 한다.
전력거래소 전력통계정보시스템을 보면, 7월 전력 수요가 절정에 이른 시점에도 우리나라 발전설비 가운데 33%(전력 생산능력 기준)가 예비 설비로 남아 있었다. 설비 예비율이 30%를 넘어선 것은 2003년 7월 이후 14년 만에 처음이다. 예방 정비나 설비 고장으로 가동 중단중인 발전소를 제외하고 계산한 공급 예비율도 7월에 가장 낮아졌을 때가 12%였다.
전력설비가 남아도는 것은 수요는 늘지 않지만 설비는 크게 늘렸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말 상업운전에 들어간 신고리 원전 3호기를 비롯해 지난해와 올해 준공한 발전설비 용량은 발전소 15기에 약 13기가와트에 이른다. 그러나 올해 최대 전력수요는 7월21일의 84.58기가와트로 역대 최대였던 지난해 8월12일의 85.18기가와트와 별 차이가 없다. 올해 상반기 전력소비도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1.17% 늘어나는 데 그쳤다.
과거 정부는 전력 수요 전망을 크게 부풀려 전력설비 확충에 열을 올렸다. 2013년 초 확정한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027년까지 전력 소비가 연평균 2.2%(최대 전력소비는 2.4%) 늘어날 것이라고 봤다. 2015년 확정한 7차 기본계획에서는 향후 연평균 증가율을 2.1%(최대 전력은 2.2%)로 봤다. 그러나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연평균 전력 소비는 1.2% 증가했을 뿐이다. 2016년엔 2.8% 증가했는데, 이는 하계 주택용 누진요금제 한시 완화 등 적극적인 수요 진작에 따른 것이었다.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요 전망 워킹그룹은 지난달, 우리나라 전력 소비가 2030년까지 연평균 1.1%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새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맞춰 전력 소비량을 의도적으로 낮게 잡았다는 주장도 있지만, 경제성장률 저하, 산업구조 변화, 최근 몇년간의 전력 소비 추이 등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약하다. 지금이야말로 소비 전망에 낀 거품을 걷어내고, 합리적인 예측으로 불필요한 설비 확충을 억제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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